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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대신 美·獨 국채로… '안전자산' 대세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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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대신 美·獨 국채로… '안전자산' 대세 바뀐다

입력
2012.05.28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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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미국 달러 및 국채, 일본 엔화, 스위스 프랑…. 글로벌 위기 때마다 '돈'의 피난처로 각광 받아 온 전통적인 안전자산들이다. 하지만 어느 것도 영원히 안전할 수는 없는 법. 최근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불안이 고조되면서 안전자산 지형도가 뒤틀리고 있다. 미국 달러화와 국채는 여전히 안전자산의 입지를 굳건히 하고 있는 반면 금의 인기는 급속도로 식고 있다. 일본 엔, 스위스 프랑의 위상도 예전 같지 않다. 대신 요즘 미국 국채와 함께 안전자산의 쌍벽을 이루는 것이 독일 국채다.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각광받던 금은 요즘 체면을 잔뜩 구기고 있다. 28일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 따르면 연휴 시작 전인 25일(현지시간) 금 선물가격은 온스당 1,568.80달러를 기록했다. 이달 중순엔 1,527달러까지 밀리면서 1,500달러 붕괴를 눈앞에 두기도 했다. 작년 9월 2,000달러 돌파를 목전(1,920달러)에 뒀던 것과는 천양지차다.

금은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이 풀릴 때 물가 상승에 대한 위험을 차단해주는 '인플레이션 방어 자산'으로 각광 받았지만, 지금은 이런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들이 많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이미 선진국들의 기준금리가 제로(0)에 가깝기 때문에 추가 금리 인하가 어렵다"며 "금이 더 이상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이유"라고 보도했다. 여기에 세계 최대 금 수입국인 인도가 루피화 가치 급락으로 금 매입 규모를 대폭 줄이고 있는 것도 금 약세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골드만삭스는 한 보고서에서 "금이 '최후 피난처 통화'로서의 빛을 잃은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요즘 안전자산의 대세는 누가 뭐래도 미국 달러화다. 스스로 진원지였던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흔들림이 없었고, 이번 유로존 위기에선 금을 압도하는 안전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주요 6개국(유럽 일본 영국 캐나다 스웨덴 스위스) 통화 대비 미 달러화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 인덱스는 연일 연고점을 갈아치우며 25일(82.416) 2010년 9월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달러화는 유로화에도 강세를 보여 유로당 1.25달러 선까지 붕괴(달러가치 상승)됐다.

미국 국채의 인기도 폭발적이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은 최근 1.70%까지 떨어지며 작년 9월 기록했던 사상 최저치(1.67%)를 넘보고 있다. 국채 수익률이 급락하는 건 인기가 많아 국채 가격이 치솟고 있다는 뜻이다. 작년부터 미 국채 가격이 과대 평가됐다며 공공연하게 투자하지 말 것을 권했던 세계 최대 채권운용사 핌코의 빌 그로스 최고투자책임자조차 "지금 믿을 만한 투자자산은 미국 국채 뿐"이라고 떠들 정도다. "(미국은) 더러운 셔츠들 가운데 그나마 가장 깨끗한 셔츠"라는 게 그가 입장을 번복한 이유다.

유로존의 유일한 버팀목인 독일의 국채도 요즘 새롭게 안전자산으로 각광 받고 있다. 사상 처음 발행된 2년물 제로(0) 금리 국채에도 70억유로(약 9조원)의 자금이 몰렸을 정도다. 국채 보유자에게 단 한 푼의 이자도 지급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너도나도 사겠다고 달려 들었다는 얘기다. 반면 스위스 프랑은 외환당국의 개입이 빈번히 이뤄지면서 안전자산의 기능을 점차 상실해가고 있고, 일본 엔화 역시 국가신용등급 하락에 따라 과거 같은 위상을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추세가 지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미 미국 국채나 독일 국채에 대한 과도한 쏠림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액션이코노믹스의 킹 루퍼트 애널리스트는 "미 재무부가 국채 입찰에 한두 번 실패하면 투자자들은 순식간에 빠져 나갈 것"이라고 했고, 스미스앤윌리엄스의 로빈 마샬 펀드매니저 또한 "유로본드(유로화 공동채권) 도입이 불발된다고 해도 독일의 부담액이 커질 수밖에 없는 만큼 독일 국채의 투자 리스크는 확대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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