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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 박람회는 전시성 성격… 정부, 현장 목소리를 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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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 박람회는 전시성 성격… 정부, 현장 목소리를 들어야"

입력
2012.05.28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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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구직난은 경력이 변변찮은 노인들만의 고민이 아니었다. 정부 기관의 4급 이상 간부, 상장기업 임원급, 금융계 지점장급 경력을 지닌 고급인력도 퇴직 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국일보는 중견전문인력고용지원센터에 의뢰해 능력에 걸맞은 일자리를 찾고 있는 고학력 고령 구직자들을 인터뷰했다.

정부 산하 공공기관에서 23년간 재직하다 퇴직한 정모(56)씨. 박사과정을 수료한 학력에 영어와 일본어까지 가능한 화려한 '스펙'을 지녔지만 5개월 구직기간 동안 면접 한 번 보지 못했다. 그는 "희망연봉(5,000만원)이 높아서인지 좀처럼 기업 쪽에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구직활동을 하며 취업센터 교육과 각종 동아리 활동, 컨설팅도 받아봤지만 별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는 특히 각종 노인 채용박람회의 비효율성을 지적했다. "정부에서 하라니까 억지로 하는 것 같은 분위기이고, 참여한 기업들도 대부분 영세한 수준이라 채용여력이 거의 없어 보이더군요." 그는 "대다수 노인들이 '맨 땅에 헤딩' 식으로 일자리를 찾고 있다"며 취업센터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취업자의 능력과 기업의 수요를 파악해 가급적 일대일 면접을 주선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방송사 PD로 33년간 일하다 퇴직한 정모(61)씨는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퇴직 후 1년간 문화센터 강사로 일했고, 지금은 5개월째 조건이 더 나은 일을 구하는 중이다. 그는 "미디어 분야 종사자들이 퇴직 후 갈 곳이 너무 없다"며 "비록 보수가 낮은 비정규직이라도 언론계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형 증권사에서 일하다 작년 2월 퇴직한 강모(55)씨는 "나름 괜찮은 일자리가 나오긴 하지만 그 수가 너무 적어 하늘의 별 따기"라고 했다. 강씨는 "이미 퇴직한 마당에 고액 연봉은 꿈도 꾸지 않는다"며 "임금보다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직종이 중요한데, 정부의 일자리 대책은 너무 전시성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대기업 임원 출신의 김모(56)씨는 기계 분야의 해박한 전문지식과 풍부한 경험이 무기. 하지만 백수 생활이 벌써 3년째다. 중소기업 전문경영인 자리에 지원해봤지만, 요즘은 자신과 비슷한 임원 경력자들이 대거 쏟아져 나와 수요보다 공급이 훨씬 많은 실정이다. 그는 "중소기업들도 가급적 젊고 다루기 쉬운 인력을 원하는데다 중소기업 특유의 문화나 사내용어에 익숙하지 않아 대기업 임원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고 했다.

경비원 같은 단순직종도 시도해봤지만 오히려 화려한 이력이 걸림돌이 됐다. 김씨는 "정부가 '일자리 몇 만개 창출' 식으로 양에만 집착하지 말고 실제 현장에 나와 노인들이 어떤 일자리를 원하는지 구체적으로 파악해 정책에 반영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채정기 인턴기자(숙명여대 일본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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