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정치권에선 친(親)이란 말이 자주 쓰인다. 친족, 친척 등 피붙이에 붙는 이 말이 최근 특정 정치인 이름 앞에 붙어 계파 판도를 읽는 키워드가 됐다. 새누리당을 장악한 친박근혜계를 위시해 친문재인계 친김두관계 친손학규계 친안철수계라는 표현도 등장하고 있다.
흔히 정치는 사람 장사라고 한다. 하지만 1차 집단에나 어울릴 용어가 2차 집단인 정당에서 자주 쓰이는 건 그만큼 노선보다는 인맥에 따라 움직이는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새누리당의 경우 친박계와 비박(非朴) 진영으로 구분된다.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소속 국회의원 150명이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기준으로 나뉘어져 있는 셈이다. 물론 친박계에선 "더 이상 계파는 없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대놓고 박 전 위원장에 대립각을 세울 계파가 없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박 전 위원장의 정책이나 정치적 입장에 대해 딴 목소리를 찾기 힘든 게 당내 현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당내 긴장 관계를 형성할 정도로'노선이 다른' 계파가 없는 것이 위험할 수 있다.
야권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친'이 붙는 사람의 숫자가 많다는 게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친노무현그룹은 친문재인계 친김두관계로 분화되고 있고, 친안철수계도 스멀스멀 나타나고 있다.
의회주의를 잉태한 영국에도 계파는 존재한다. 대신 '사람'보다는 정책 노선에 따라 나뉘어지는 점이 우리와 다르다. 보수당엔 사회적 약자 배려도 강조하는 '일국 보수주의'(One Nation Toryism)파와 개인ㆍ시장을 강조하는 자유주의파가 있다. 노동당에도 실용 좌파((New Labour)와 전통적 좌파 등 두 축이 있다. 어느 당이 여당이 되더라도 노선이 다른 당내 계파가 여당 내 야당 역할을 한다. 때문에 양당 체제임에도 상대적으로 다양한 사회 흐름이 국정에 반영된다.
미국 민주당 내부에서도 친(親)오바마, 반(反)오바마 등이 있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대신 건강보험개혁법, 중국 통화법 등 구체적 법안을 놓고 찬성파와 반대파가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노선이 아니라 사람에 좌우되는 정치문화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당장 능력보다는 특정인과의 친소 관계가 정부 요직이나 국회ㆍ당직 인선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주군을 정점으로 한 인적 피라미드 구조에선 이너서클에 의한 부정부패가 발생할 확률도 높아진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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