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많은 국민은 1970년대 통일벼 개발을 굶주림에서 해방시킨 역사적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전보다 쌀을 40% 가량 더 많이 생산함으로써 산업의 근대화를 끼니걱정 없이 완수해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초석을 다질 수 있었으니 그럴만하다. 당시만 해도 농촌에서는 아직 외국산 농산물의 수입이 자유화되지 않아 증산된 만큼의 쌀은 고스란히 소득증가로 이어져 농업의 '재미'를 한껏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많이도 변했다.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1970년도 134.8kg에서 지난해 71.2kg까지 줄었다. 반만년 이어온 '농자천하지대본'의 대명사인 쌀농사가 농가소득 기여도 측면에서 과채류와 축산에 밀려난 지 오래다. 90년대 불어 닥친 WTO(세계무역기구)의 수입자유화는 국내 농산물의 안정적 판로에 상시적인 불안요인이 된 상태다. 그 사이 농업의 대세는 양에서 고품질의 친환경농업으로 바뀌었지만, 65세 이상의 농가인구는 70년 5%에서 2010년 32%로 더 많이 고령화됐다. 때문인지 피땀 흘려 생산한 친환경농산물은 판매망의 준비부족으로 제값을 못 받는 경우가 태반이다. 이렇다 보니 도시가구 대비 농가의 소득비율은 갈수록 떨어져 2010년엔 66.8%를 기록하면서 불과 6년 전인 2004년에 비해 11% 포인트나 추락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 농업농촌의 현주소다.
이런 가운데 세계 각국은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목표로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통한 총성 없는 무역관세 허물기 경쟁에 열중이다. 우리도 칠레, EU, 미국에 이어서 중국 등과 농업분야를 포함한 FTA 체결을 계획하고 있다. 많은 사람은 조상대대로 지켜온, 그러나 열악한 우리의 농업시장이 해외 농업대국에 넘어가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현 소득을 지켜내면서 중장기적으로는 농업농촌 부흥에 희망적인 전략마련이 절실하다. 다시 말해 국내 농업시장을 확실하게 지키면서 탄탄대로 수출농업의 길을 모색해야 하겠다. 당국에서는 정예 농업인력의 육성에 추가해서 각종 영농직불금 제도의 확충과 농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다양한 중장기 투자계획까지 마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산물의 판로를 담당할 농협의 역할도 법제화 됐다. 지난 몇 년의 기상이변은 전 국민에게 곡물자급률 27% 대의 우리나라 식량안보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했다. 봄이 유례없이 짧아진 올해의 농사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농업농촌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된 셈이다.
이참에 우리의 당면한 농업문제를 국민적 공감대로 풀어보면 어떨까. 공통분모는 식량자급률의 제고와 안전농산물의 확보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농업인은 안전성이 검증된 최고의 명품농산물 생산에 매진하면서 소비자에게 품질로 평가받는 자구책이 있어야겠다. 이는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직거래 고객확보에 필수적이다. 농산물의 안전성 문제는 국민의 15% 이상이 친환경 유기농식품을 애용한다는 사실이 말해주듯 소비자에게 가격 이상의 구매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독창적인 영농으로 '발아쌀' 80kg에 시중가격보다 10배 비싼 200만원을 받는 한 농업인의 사례는 더없이 이채롭다.
소비자는 식량의 안정적인 확보와 안전농산물을 지속적으로 소비할 수 있도록 농업농촌의 보전과 농산물의 판로에 더 많은 관심과 신뢰를 가져야 한다. 소비자연합 중심의 농산물 직거래 운동인 미국과 영국의 지역사회지원농업(CSA), 프랑스의 농업과 농민을 지키는 연대(AMAP), 식생활교육을 통한 식량자급률 제고와 농산물의 건전한 소비에 기여하는 일본의 식육기본법 등은 타산지석의 좋은 사례다. 우리네 소비자생활협동조합 활동도 좋지만, 좀 더 확실하게 가칭 '우리농업 지키기' 운동이라도 거국적으로 벌려보면 어떨까.
이제 FTA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우리는 아시아, 아프리카는 물론이고 남미에서까지 러브콜 받는 선진 농업기술을 갖고 있다. 우리들 앞에는 품질로 경쟁해볼만한 국내의 140배에 달하는 세계 유기농식품시장이 활짝 열려 있다.
강위금 농촌진흥청 농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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