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본제철 회장이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일본 시민단체와 긴밀하게 협력해나겠습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24일 대법원 판결을 누구보다 주목했던 인물이 이희자(71)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다. 미무라 아키호 신일본제철 회장을 만나 "한국의 재판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답변을 이끌어 낸 그는 27일 "(상고심 판결은)새로운 싸움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원고 승소 판결이 났지만, 그 의미를 살려 일본 기업의 보상을 받아내야 한다는 말로 읽혔다.
최대 강제징용 피해자 단체를 이끌고 있는 이 대표는 이 분야의 대모로 통한다. 1997년 신천수, 여운택 할아버지 등을 참여시켜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제기한 소송 등 10여건의 재판에서 유족들을 지원하고 있다. 스스로도 피해자 유족인 그는 강제 징용된 뒤 소식이 끊긴 아버지의 흔적을 찾기 위해 89년 이 운동과 인연을 맺었다.
이 대표는 "정부가 71년 일본에서 받아 놓고도 92년에서야 공개한 징용자 명부에서 아버지 사망 사실을 확인했다"며 "병사 확인 후 손을 떼고 싶었지만, 일본 입장에서 일을 처리하는 정부에 화가나 시작한 게 23년이나 됐다"고 회고했다. 사망한 한국인의 야스쿠니 신사 합사 사실과 미불임금 공탁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것도 이 대표 덕분이었다.
그는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국민의 무관심이 안타깝다고 했다. 이대표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재판을 진행할 때도 손을 먼저 내민 쪽은 '신일본제철재판지원회', '군인군속재판지원회' 등 일본 시민단체였다"며 "국내 변호사들은 돈 되는 사건에만 매달렸고, 한국 사회는 좀처럼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말했다. 패소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99년 말쯤 "한국에서도 소송을 한번 제기해보자"는 의견을 냈다.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장완익 변호사는 "일본에서의 패소는 그렇다 치더라도 한국의 법원까지 일본 손을 들면 피해자들의 충격이 더 클 수 있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밀어 붙였다. 이 대표는 "결국 우리가 이기긴 했지만 이기겠다는 생각으로 소송을 냈다기 보다는 한국 정부도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 달라는 외침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고 했다. "싸움의 힘은 자료에서 나옵니다. 새로운 싸움이 얼마나 계속될지 알 수 없고, 강제징용 생존자들이 얼마나 더 살아계실지 알 수 없으니 여유를 부릴 순 없죠."
글ㆍ사진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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