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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비씨카드배 깜짝우승 백홍석 키운 권갑용 8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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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비씨카드배 깜짝우승 백홍석 키운 권갑용 8단

입력
2012.05.25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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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백홍석이 제 4회 비씨카드배 결승 4국서 중국의 당이페이를 물리치고 첫 세계타이틀을 따던 날, 백홍석의 스승 권갑용 8단(57)에게도 하루 종일 축하 인사가 줄을 이었다.

우승 직후 가진 TV인터뷰에서 가장 먼저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저를 바둑계로 이끌어 주신 권갑용 사범님"이라고 대답하는 백홍석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동안 이세돌ㆍ최철한을 비롯해 많은 제자들을 세계 챔피언으로 길러낸 명조련사지만 백홍석은 국내외 기전에서 무려 아홉 차례나 준우승에 머물며 마음고생이 심했기에 더욱 가슴이 뿌듯했다.

1983년 국내 최초의 바둑교실로 출발해 1987년 프로 지망생을 위한 전문 도장으로 전환한 권갑용바둑도장은 1989년 박승문(6단)을 시작으로 지난해 입단한 김성진(초단)에 이르기까지 총 46명의 프로 기사를 배출했다. 2004년 출신 기사 단위 합계가 100단을 돌파했고 2009년에 200단을 넘어서 명실 상부한 국내 최고의 명문 도장으로 자리매김했다.

2012년 5월 국내 프로 기사 랭킹을 살펴보면 권(갑용)도장이 한국 바둑계서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한눈에 알 수 있다. 1위 이세돌에서부터 2위 박정환, 4위 원성진, 5위 최철한, 6위 김지석, 7위 강동윤, 8위 백홍석, 10위 이영구에 이르기까지 3위 박영훈과 9위 조한승을 제외한 톱 랭커 8명이 모두 권도장 출신이다. 이세돌ㆍ박정환ㆍ원성진ㆍ최철한ㆍ강동윤ㆍ백홍석 등 세계 챔피언이 여섯 명이고 김지석ㆍ이영구ㆍ윤준상 등 국내 기전 우승자까지 합치면 타이틀 홀더가 열 명이 넘는다. 조훈현ㆍ서봉수ㆍ유창혁ㆍ이창호의 4천왕 체제가 무너진 이후 2000년대 한국 바둑계를 사실상 권도장 출신이 석권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권도장의 성가는 대단하다. 대만의 1인자인 천스위엔 - 장정핑 부부가 모두 권도장 출신이고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는 류시훈ㆍ김수준도 어린 시절 권도장에서 오랫동안 공부했다. 딸 권효진과 사위 위에량도 도장 동문이다. 이 밖에 중국과 일본은 물론 미국ㆍ유럽ㆍ호주 등 세계 각국에서 찾아오는 단기 연수생이 줄을 잇고 있으며 중국 일본의 바둑 도장들이 권도장의 교육 시스팀을 벤치 마킹해서 그대로 따라할 정도다. 다음은 일문일답

_단일 도장에서 이처럼 많은 타이틀 보유자를 배출하게 된 비결이 궁금하다.

"당시 시대적 배경이 좋았죠. 현재 톱랭커들이 거의 다 1980년대 출생인데 이들이 바둑을 시작할 때가 이창호의 활약으로 국내에 바둑붐이 크게 일었던 시기였죠. 그래서 이세돌을 비롯해 그에 버금가는 뛰어난 자질을 갖춘 영재들이 무척 많이 발굴됐습니다. 이들이 도장에서 함께 부대끼며 선의의 경쟁을 벌이다 보니 저절로 모두들 정상급 기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백홍석의 경우 이영구ㆍ윤준상ㆍ천스위엔과 같은 또래인데다 이세돌ㆍ 최철한 등 걸출한 선배들에게 많은 자극과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_권도장 출신 기사들에게서는 유달리 끈끈한 동문 간의 정이 느껴진다.

"일반인은 대개 중고교 동창들이 가장 친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대부분 도장에서 숙식을 함께 하기 때문에 도장 동문들이 가장 친한 사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평소 아이들에게 동문 간에 사이 좋게 지내야 한다고 강조하고 이런저런 모임이나 회식 자리도 자주 마련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도장 출신들보다는 좀 더 강한 일종의 가족 같은 분위기가 자리 잡게 됐지요. 올 연말께 정식으로 권도장 동문회도 결성됩니다. 그동안 바둑계의 모임이 대부분 입단자 위주로 움직였지만 저희 동문회는 입단 여부를 떠나 모든 동문들이 함께 참여토록 해서 단순한 친목 도모 뿐 아니라 바둑계에 뭔가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한 일들을 찾아서 해 나갈 계획입니다."

_1983년에 국내 최초로 바둑 교실을 열었다. 서른도 안 된 나이에 일찍이 승부사의 길을 접고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제가 어렵게 프로에 입문했어요.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돌아가시는 바람에 생활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무렵 형제들이 각자 살 길을 찾아 뿔뿔이 헤어졌고 이후 홀로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신문팔이부터 구두닦이까지 정말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바둑은 어릴 때 형에게 배웠는데 기재가 있었는지 바둑이 정말 재미있었고 동네에서는 상대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물론 제대로 된 스승이 있을 리 없죠. 몇 달 동안 일을 해서 얼마간 돈이 모이면 바로 청계천 헌 책방으로 달려가 바둑책을 사 보곤 했습니다. 한국기원에서 대국 기록자 일을 맡게 돼 그 수입으로 생활도 하면서 본격적으로 바둑 공부를 시작 했습니다.

그러다 군대 갈 때도 됐고 해서 1975년에 마지막으로 입단 대회나 한 번 나가 보고 다 그만 두려고 했는데 덜컥 입단이 됐지요. 하지만 입단 이후 별로 성적을 내지 못했고 아무래도 어릴 때 제대?배우지 못한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대한 후 이제부터라도 재능 있는 아이들에게 바둑을 잘 가르쳐 보자는 생각으로 바둑 교실을 내게 됐지요. 이후 바둑교실이 너무 많아져서 좀 더 전문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바둑 도장으로 전환했습니다. 이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당당히 제 이름 석자를 간판에 내걸었죠. 그 후 아이들과 함께 바쁘게 지내다 보니 어느덧 30년이 다 됐군요. "

_그동안 도장을 운영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

"말로 다 하기 어려울 정도죠. 훈장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말이 있듯,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워낙 바둑이 좋고 아이들을 좋아하니까 가능했지요. 아내(박옥주ㆍ55)가 고생이 많았습니다. 결혼 후부터 줄곧 아이들 밥 해 주고 빨래에 생활 관리까지 도맡았으니까요. 홍석이만 해도 초등학교 3학년 때 우리 집에 와서 7년 간 함께 지냈습니다. 지금도 집에 아이들이 25명 정도 있는데 아내에게 무조건 미안하다는 마음뿐 입니다."

_평소 대단히 무서운 호랑이 선생님이라고 들었다.

"아이들에게 좀 엄격한 편입니다. 공부 제대로 안 하고 학습 태도가 불량한 학생은 가차 없이 내쫓은 적도 많지요, 전 아이들이 단순히 프로 기사가 되기보다 일류 기사가 되는 걸 목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 방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을 좀 더 강하게 키우기 위해 약간 무섭게 대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당시 아이들이 모두들 저를 잘 따라 주었고 그 결과 오늘의 좋은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서인지 요즘 아이들은 참을성이 많이 부족합니다. 학부형들도 마찬가지예요. 어느 분야든 최고가 되려면 많은 고생을 참고 이겨내야 하는데 요즘은 조금만 힘들면 금방 포기하곤 합니다. 부형들도 한두 번 성적이 나빠지면 바로 도장을 옮기곤 해서 사범들이 소신 있게 교육을 펼치지 못하는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최근 한국의 신예들이 중국의 신예들에게 전반적으로 밀리는 현상을 보이고 있는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가 바로 이런 나약함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_백홍석이 우승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으로 스승님을 꼽았다. 평소 제자들이 큰 시합에 임할 때 여러 가지 조언을 해 준다고 들었는데 이번에 백홍석에게는 어떤 얘기를 했나.

"당이페이는 큰 시합 경험이 없기 때문에 자기 실력을 충분히 발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승부를 서두르지 말고 차분히 판을 이끌어 나가라고 했습니다. 사실 홍석이도 세계 대회 결승이 처음이고 평소 예민한 성격이어서 너무 긴장해서 컨디션이 흐트러지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모든 것을 잘 극복하고 차분하게 두다 보니 역시 당이페이가 먼저 당황해서 실수를 하고 결국 자멸하더군요."

_바둑 도장은 언제까지 계속 할 계획인지.

"처음에는 딸 효진이가 결혼도 했고 사위도 프로 기사여서 이들에게 도장을 맡기고 슬슬 골프나 치면서 지낼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어서 선뜻 맡기기가 걱정이 됐고 그보다 우선 제 자신이 아이들과 지내는 게 너무 좋아서 다시 생각을 바꿨습니다. 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도 열심히 새로운 바둑 영재를 발굴하고 훌륭하게 키워서 한국 바둑이 계속 세계 최강으로 군림할 수 있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겠습니다."

박영철 객원 기자 indra36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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