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토마스 프랭크 지음ㆍ김병순 옮김/
갈라파고스 발행ㆍ360쪽ㆍ1만6000원
미국에서 노동자와 서민, 사회적 약자의 지지를 받는 정당은 물론 민주당이다. 그런데 2000년 대선에서는 친기업적이며 부의 재분배에 소극적인 공화당의 조지 W 부시가 서민들의 열화와 같은 지지를 업고 승리를 거머쥐었다.
미국의 진보 지식인 토마스 프랭크는 상식으로 납득하기 힘든 이 같은 현상의 배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의 고향이자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인 중서부 '그레이트 플레인스(대초원)'의 캔자스로 갔다. 그 지역은 부시와 앨 고어가 무승부나 다름 없던 그 대선에서 부시에게 80%의 표를 몰아준 곳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를 위한 정당에 몰표를 던지는 이유를 그는 그곳의 정치인과 시민운동가들을 만나고, 주민의 정치의식이나 행태 변화를 관찰하면서 해명해간다. 결론은 보수 공화당이 부자 편향이나 친기업 같은 본질은 뒤로 감추면서 낙태나 종교문제 등 '가치'를 전면에 내세워 조직적으로 서민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 동안 자유주의 민주당은 나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이 유권자들이 현혹 당하는 데에는 민주당 세력이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적지 않다고 지적한다. 어차피 노동자들은 우리 사람이라고 생각한 민주당 주도층은 블루칼라 유권자들을 잊고 대신 자유주의 성향의 부유한 화이트칼라 전문가들을 끌어들이기 바빴다. 그리고 기업의 이익을 보호한다고 강조하는데 열심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의 보수화는 '노동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들을 조롱하고 경멸하며 역사의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민주당의 '어리석은 전략'의 결과라고 저자는 거듭해서 강조한다.
그가 책에서 예견한 대로인 부시의 재선은 '건장한 공장 노동자들이 국가에 대한 충성의 맹세를 암송하면서 스스로 자기 목을 조'르고 '가난한 소농들은 자신들을 땅에서 내쫓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표를 던'지는 아이러니의 산물이었다.
지금 한국의 진보가 권력다툼으로 지리멸렬한 사이, 보수는 순식간에 얼굴 화장까지 고치고 '종북'이라는 낡은 이데올로기로 시민들을 현혹하려 들고 있다. 2000년 미국 대선이 2012년 한국의 현실이 아니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 것인가.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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