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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손자와 친구가 된 일흔여섯 노시인의 동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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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손자와 친구가 된 일흔여섯 노시인의 동심

입력
2012.05.2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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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신경림 지음ㆍ이은희 그림/실천문학 발행ㆍ104쪽ㆍ1만원

신경림(76) 시인이 등단 57년 만에 처음 펴내는 동시집이다. 시인은 4년 전 낸 열 번째 시집 <낙타> 에 동시 7편을 싣고, 재작년 동시 전문지 '동시마중'에 신작 7편을 발표하는 등 최근 들어 동시 창작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수록작 43편은 최근 6~7년 사이에 쓴 것으로, 절반 이상이 처음 발표하는 작품들이다.

시인은 시집에 "손자가 생기면서 동시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며 "나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손자의 생각과 행동을 읽으면서 이것을 형상화하면 정말로 훌륭한 문학이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적었다. 그 창작 동기가 동시에 대한 계몽주의, 현실참여주의와 거리를 두고 "다만, 아이들의 세계에 들어가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살고 보았다"는 시인의 시작(詩作) 방식과 상통한다.

'붉은 노란 꽃밭이 된/ 아파트 빈터/ 아빠와 엄마는 아름답다고/ 정말 아름답다고// 나는 끝내 말 않을 거야/ 그 꽃들을 내가 심었다는 걸// 싸우고서 말도 안하던 동무가/ 아무도 모르게 생일 선물로 준/ 꽃씨 한 봉지// 나는 끝내 말 않을 거야/ 그걸 내가 심었다는 걸// 우리 비밀 곱게 핀/ 아파트 빈터'('비밀')

쟁쟁 운을 살려 아이들을 낭독의 즐거움으로 이끄는 시들도 여러 편이다. '다람쥐가 놀랄라/ 산토끼가 놀랄라/ 발걸음도 조용조용/ 말소리도 조용조용// 멧비둘기 놀랄라/ 산 꿩이 놀랄라/ 노래도 조용조용/ 휘파람도 조용조용'('산길을 조용조용'에서)

시집 속 아이들의 눈이 문제적 현실을 향할 때 어른들도 함께 읽을 만한 동시들이 탄생한다.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하는 얼굴이 검은 아저씨에게 아이(시적 화자)는 우유를 건네며 묻는다. '아저씨 딸, 나만큼 예뻐요?/ 아저씨 딸, 나보다 키가 커요?'('공사장 아저씨와'에서) 이 천진한 질문이 외국인 노동자를 에워싼 차이의 논리를 무력화하고 평범한 한 남자와 대면하게 한다.

영어 교육 광풍도 동심 앞에 머쓱해진다. '미국 어린이는/ 미국 말로 얘기를 하고// 중국 어린이는/ 중국 말로 놀이를 하고// 아기 비둘기는/ 비둘기 말로 노래를 하고// 우리는 우리말로 공부를 하는데// 어른들은/ 그것이 싫은가 봐'('어른들은 싫은가 봐'에서) 표제작은 번갈아 가며 늦은 귀가를 알리는 맞벌이 부모를 기다리다가 결국 텔레비전을 켜놓고 잠든 아이의 독백이다. '이윽고 귓전에/ 엄마 목소리// "얘는 날마다/ 텔레비전만 보나 봐"//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시집 4부에 실린 장시(長詩) 3편은 시로 쓴 전래동화처럼 읽힌다. '두부 일곱 모 쑤어 이고' 손주들을 만나러 산길을 나선 할머니('꼬부랑 할머니가'), 끼니를 구하려 얘기 듣길 좋아하는 부자를 무작정 찾아나선 먹보('저기 저기 저 눈깔') 등이 그 주인공이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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