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진영 내부에서도 '종북(從北)'관련 질문에 침묵하고 북핵이나 3대 세습, 북한 인권 문제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는 통합진보당 구당권파 인사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부정 경선을 통해 당선된 비례대표 당선자들이 사퇴를 거부한 데 이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전혀 밝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상당수 진보 논객들은 '진보의 재구성'을 위해선 더 이상 북한 문제를 덮어둬선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24일 통화에서 "진정한 진보 노선을 취한다면 북한 체제를 비판해야 한다"며 "유럽의 서구 좌파가 소련에 실망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일을 겪었는데, 우리가 지금 그런 단계에 왔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소련 체제가 붕괴하면서 서구 좌파의 노선 수정과 재구성이 이뤄졌듯이 한국의 진보 진영도 북한 문제를 극복하고 재도약해야 할 시점을 맞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진보가 대중화되고 확장되는 지금 단계에서 주사파들이 장애를 초래하고 있다"며 "3대 세습이나 북핵 문제에 대해 말 돌리기를 하고 'NCND'(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음) 태도를 보이는 것은 진보를 궤멸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강조했다.
통합진보당이 4∙11총선을 통해 13석을 가진 제3당으로 부상한 이상 북한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자신들은 (북한관에 대한) 사상 검증을 부당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제도권 정치인이 된 이상 북한에 대해 입장이 이러이러하다고 설명해야 국민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정치권 바깥에서 일반인에게 '너의 사상은 무엇이냐'고 윽박지르는 것은 안 되지만 이 사람들이 끝까지 말을 못한다면 직업정치를 하지 말고 밖에서 계속 운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보 정당의 한 관계자도 "헌법에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보장돼 있으므로 모든 사람들에게 종북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입장을 분명히 밝히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하는 데다 국가 주요 정보를 다루면서 '정치 행위'를 하게 되므로 북한 문제 등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힐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자유민주연구학회(회장 조영기)가 23일 주최한 '종북 좌파 네트워크의 현주소' 세미나에서 '진보의 그늘'저자인 한기홍씨는 "과거 민혁당 당원 100여명을 비롯해 NL(민족해방)계의 영향권에 있던 1만명 가운데 4,000~5,000명 정도가 통합진보당에서 NL 노선으로 당을 접수했다"며 "이미 노출돼 활용가치가 떨어진 비례대표 당선자들보다는 '얼굴'없이 지하와 배후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앞으로 더 위협적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단만 상당수 진보 인사들은 "통합진보당 사태를 좌파 이념과 진보세력을 공격하는 계기로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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