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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길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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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길 열렸다

입력
2012.05.24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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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일제의 식민지배 피해를 당한 우리 국민이 그간 일본 기업을 상대로 국내외에서 제기한 소송에서 일본 기업의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하 한일협정) 당시 한국 측이 추산한 강제징용자는 약 76만명이다. 이번 판결로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가족의 추가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24일 태평양전쟁 말기 강제징용 피해자인 여운택(89)씨 등 9명이 각각 일본 미쓰비시중공업과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1억~1억1,000만원의 손해배상 및 임금지급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일본 기업의 손을 들어줬던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과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여씨 등은 파기환송심에서 손해배상액이 확정될 경우 일본 기업을 상대로 강제집행 절차를 통해 배상금을 받아낼 수 있을 전망이다.

재판부는 "일본 최고재판소가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한 판결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합법적이라는 인식을 전제로 하고 있어, 일본 판결을 그대로 승인하는 것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그 밖의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것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여씨 등이 일본에서 같은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지만, 일본 재판 결과의 효력을 역사인식이 다른 한국에서 그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어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한일협정의 적용 대상이 아니며, 설령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개인의 청구권 자체가 소멸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일협정에 따른 국가간 배상과는 별개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개인적으로 일본 기업에 피해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또 "1950년 해산된 구 미쓰비시와 피고 미쓰비시, 구 일본제철과 피고 신일본제철은 동일한 사업을 계속하는 등 법적으로 동일한 회사로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전후처리 및 배상채무 해결을 위해 구 미쓰비시와 미쓰비시, 구 일본제철과 신일본제철을 각각 다른 회사로 분리한 일본은 구 미쓰비시, 구 일본제철에 징용됐던 원고들에 대한 배상 책임을 회피해 왔다.

고 이명목씨 등은 1944년 히로시마의 미쓰비시 기계제작소 등에 끌려가 원자폭탄 투하로 작업이 중단될 때까지 일하다 귀국했다. 이들은 1995년 히로시마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지만 소멸시효 완성 등을 이유로 패소했다. 2000년 부산지법에 낸 같은 내용의 소송 1ㆍ2심에서도 모두 패소했다. 일본 최고재판소 역시 2007년 이들의 패소를 확정했다. 여운택씨 등도 1997년 오사카지방재판소와 고등재판소에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잇달아 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패소했고, 2005년 국내 소송에서도 패소했다.

한편 대법원은 일부 원고들이 제기한 1965년 한일협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에 대해서는 "한일협정의 위헌 여부가 재판을 하기 위한 전제가 된다고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각하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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