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도 이제 신용등급(Credit-rating)과 무관한 삶을 생각하기 어려워졌다. 가계부채가 1,000조원에 육박, 부채 원리금 상환 부담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드물어졌다. 기업이나 국가의 신용등급 등락이 자금시장은 물론이고 전체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주지의 사실이다. 더욱이 1997년 'IMF 사태'를 거치며 스탠더드앤푸어스(S&P), 무디스, 피치 등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 조정에 일희일비했던 기억도 '집단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다.
■ 신용등급이 자금조달 비용을 좌우하는 것은 개인이나 기업, 국가에 차이가 없다. 신용등급은 채무자의 재무 상태와 수익 전망 등 객관적 요소와 상환 의지 등 주관적 태도까지 평가한 결과로서, 채권자가 떠안는 최대 위험인 채무불이행(Default) 가능성과 반비례한다. 따라서 기업이나 국가가 돈을 빌리며 써준 차용증인 채권(Bond)의 이자율(수익률)인 '기준금리+α'의 'α'는, 적어도 발행 단계에서는 거의 신용등급에 따라 결정된다.
■ 이런 관행도 신용, 즉 세계 3대 신용평가사가 길게는 100년 넘게 실적을 통해 쌓아온 신뢰도 때문이다. 이들이 오랜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다듬어 온 정보 수집 및 분석틀에 대한 국제적 신뢰의 결과다. 그런데 이런 신뢰에 도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 'IMF 사태' 당시 한국경제의 기초체력과 동떨어진 지나친 저평가, 2008년 '리먼 사태'직전의 미 금융기관에 대한 과잉 평가, 최근 유럽 발 위기와 관련한 과도한 저평가 논란 등이 잇따랐다.
■ 최근 피치가 일본 신용등급을 낮춘 것도 화제다. 국채 신용평가가 투자자에 올바른 정보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면, 90% 이상을 국내에서 소화하고 신용등급에 무관심한 일본에는 별 의미가 없다. 미국을 최상급에 둔 것도 아리송하다. 중국의 '다궁(大公)'이 한국ㆍ일본을 'AA-', 중국을 그 아래 'A+', 미국을 더 낮은 'A'에 둔 것과 대조적이다. '빅3'의 권위마저 무너질 때의 시장혼란에 대한 우려가 이들의 신뢰도를 역설적으로 떠받치는 걸까.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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