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문화전쟁이 시작됐다. 미국이 자국 대학 등에 둥지를 튼 공자학원(孔子學院)의 일부 교사들에게, 비자 규정 위반 등의 이유를 들어 내달 말까지 출국할 것을 공고하자 중국이 강력 반발하고 나선 것. 언어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힘겨루기다.
중국은 24일 신화통신, CCTV, 환추(環球)시보 등 관영 매체들을 동원, 미 국무부가 해외 중국어 교육기관인 공자학원의 중국인 교사에게 6월 말까지 미국을 떠나도록 한 데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비난했다. 신화통신은 "지난 10여년간 아무 문제 없던 것을 갑자기 끄집어내 나가라고 하는 것은 뜬금 없다"며 "중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고 공자학원의 세가 확산되자 견제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환추시보는 "미 국무부의 느닷없는 지시에 미국 대학조차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당혹해 하고 있다"며 "미중 관계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미 국무부는 17일 공자학원을 둔 대학 등에 보낸 공고문에서 "공자학원 일부 교사가 방문학자 자격으로 입국한 뒤 미국 내 초ㆍ중ㆍ고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며 "이는 J-1 비자의 규정을 어긴 것"이라고 밝혔다. 국무부는 "해당 교사는 비자 연장이 되지 않는 만큼 이번 학기가 끝나는 6월말까지 미국을 떠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공자학원의 중국인 교사는 출국한 뒤 다시 비자를 신청해야 할 판이다.
공자학원은 중국 교육부 직속사업기관인 중국국가한판(漢辦)이 세계 각 나라의 대학교와 함께 중국어 교육ㆍ문화 전파를 위해 세운 교육기관으로, 중국 정부가 운영비를 20~30% 지원한다. 2004년 서울에 공자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처음 설립된 후 지금까지 106개국 350여개 기관으로 확산됐다. 이보다 작은 공자교실은 500개가 넘는다. 미국에는 81개의 공자학원과 300개의 공자교실이 있다. 그러나 공자학원이 중국 공산당 정책과 외교, 중화사상의 선전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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