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저녁 부산 해운대의 영화의전당 무대 조명이 한 남자를 비췄다. 수백 명의 시선이 집중됐다. 그는 크게 숨을 내쉰 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0분이 흘렀을까. 백색의 도화지에 근사한 자동차 그림이 완성됐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더뉴 M클래스'다.
M클래스는 1997년 메르세데스 벤츠가 처음 선보인 프리미엄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처음 출시 이래 120만대가 팔릴 만큼 해외에선 인기가 높다. 더뉴 M클래스는 7년 만에 출시된 M클래스의 3세대 모델로 부산 모터쇼 개막을 이틀 앞둔 이날 국내에 처음 공개됐다.
그림을 그린 남자는 이 차량의 디자인을 총괄한 디자이너다. 신차 발표회에서 디자이너가 직접 '스케치 퍼포먼스'를 하는 경우가 드물진 않지만 그가 메르세데스-벤츠 디자인팀에 근무하는 유일한 한국인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벤츠 SUV의 대표주자인 M클래스의 새로운 모델이 한국인의 손에서 탄생한 것이다.
주인공은 이일환(39·미국명 휴버트 리·사진) 메르세데스-벤츠 미국 디자인센터장이다. 이 센터장은 "오랜 기간 공들여 만든 작품을 고국에서 발표하려니 감회가 남달랐다"며 "신형 M클래스는 남성적이고 터프한 느낌을 가미하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중ㆍ고교를 다녔다. 이후 미국 동부의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RISD)을 수료하고 2002년 벤츠에 입사했다. 입사 5년 차인 2006년 CLS 2세대 모델 디자인 경쟁에 참여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현재는 벤츠의 디자인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2010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벤츠의 디자인 방향을 결정 짓는 중요한 제품으로 소개된 'F800'과 작년 프랑크프루트 모터쇼에서 컨셉트카로 주목 받은 수소연료전지차 'F 125'도 그의 디자인팀 작품이다. 그는 "벤츠의 디자인이 다소 딱딱하다는 평가가 있지만 앞으로 출시될 차는 깜짝 놀랄 정도의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이러한 변화를 담은 컨셉트카를 올해와 내년 열릴 모터쇼에 선보이기 위해 준비 중"이라며 "125년 역사의 벤츠 디자인을 새로 쓰는 변화의 시기에 한 몫을 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부산=유환구기자 red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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