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만성질환관리제 참여를 신청하면 받아주지 말 것, 보건복지부가 공고하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위원 채용 공고에 응하지 말고 의료기관 역시 조정 신청에도 응하지 말 것, 포괄수가제를 정부가 강행할 경우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서 탈퇴 예정….
최근 몇 달 사이 대한의사협회가 회원 및 기자들에게 공지한 내용이다. 국내 최대 이익단체로 꼽히는 의협이 정부와 대립한 경우는 많았지만, 최근 들어 의료정책에 사사건건 반대하며 타협이나 협의의 자세를 찾아볼 수 없어 그 정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환규 의협 회장은 지난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7월부터 7개 질병군(맹장, 치질, 제왕절개 등)에 대해 의원ㆍ병원급(종합병원 이상은 제외)까지 포괄수가제를 의무 적용하기로 한 데 대해 "복지부가 건정심 합의를 이유로 시행을 추진하면 건정심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포괄수가제는 병원을 갈 때마다, 또 의사의 진료행위마다 병원비를 내야 하는 현행 행위별 수가제와 달리 질병별로 미리 정해놓은 진료비만 내도록 하는 것이다. 이미 대부분의 선진국이 도입했고 우리나라도 10여년 시범실시 기간을 거쳤다.
의협은 "포괄수가제는 진료량이 늘어날수록 순수입이 감소하기 때문에 의료비를 통제할 좋은 제도이지만, 의료의 질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복지부는 2009년 환자 설문조사 결과 행위별수가제 만족도는 87%, 포괄수가제는 96%로 나타났다고 제시했다. 포괄수가제를 하면 과잉진료와 환자의 병원비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의협은 협의 자체를 거부하는 태도를 고집하고 있어 원성을 사고 있다. 포괄수가제 의무 확대안도 이미 2월 건정심에서 의결된 사항이지만 뒤늦게 합의를 깨겠다고 나선 것이다. 복지부는 24일 건정심을 열고 후속조치로 7개 질병의 수가(건강보험 진료비) 재조정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의협은 여기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병원협회는 협의를 진행 중인 반면 의협은 수가가 너무 낮다고 주장하면서도 수가 조정을 위한 자료 제출은 모두 거부했다"고 말했다. 건정심에 참여하는 위원들도 이런 의협의 태도를 강하게 성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건정심은 건강보험 가입자와 의료기관이 합의해 건보정책을 결정하는 의결기구로서 의사뿐 아니라 한의사, 제약사, 치과, 약사 단체와 소비자ㆍ시민ㆍ노동단체, 정부, 건보공단까지 포함하고 있다. 의협은 이런 사회적 합의 구조가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의사들도 진료과, 병원 규모 등에 따라 이해관계가 모두 다른데 의협은 기본적으로 어떤 것도 손해볼 수 없다는 인식을 갖고 나오는 정책마다 반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더구나 이 달 초 취임한 노환규 회장은 의사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강성 중의 강성으로 꼽히는 인사로, 의협의 태도는 더욱 극단으로 가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금 의협은 이미 종전 의협 집행부와 상의해서 수정한 부분까지 반대하기도 한다"며 "알고도 그러는 것인지 반대를 위한 반대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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