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외교무대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주요8개국(G8)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를 통해, 17년 만에 탄생한 좌파 대통령의 존재감과 뚝심을 확실하게 드러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15일 취임한 올랑드는 내각 발표도 미룬 채 그날로 독일로 날아가 유로존 신재정협약 개정 문제를 놓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맞짱을 떴다. 양측의 신경전은 "유럽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긴축과 성장정책의 병행이 필요하다"는 올랑드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18, 19일 미국 워싱턴 인근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G8 정상회의는 각국 지도자에게 올랑드의 색깔을 보다 분명히 각인시킨 계기가 됐다. G8 성명은 "우리의 임무는 성장과 일자리를 촉진하는 것"이라며 "위기 해법이 모든 국가에 획일적으로 적용될 수 없다"고 명시했다. 메르켈의 긴축 일변도 해법 대신 성장의 중요성을 역설한 올랑드의 주장이 너른 공감대를 얻은 것이다.
운도 따랐다. 11월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위기 타개책과 일맥상통한 올랑드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은 오바마가 공화당에 가장 각을 세우는 핵심 경제 공약이다.
올랑드는 20, 21일 NATO 정상회의에서도 소신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올해 말까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는 3,300명의 프랑스군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말해 2014년 철군 로드맵을 제시한 오바마를 당혹케 했다. 비록 조기철군 계획이 다른 회원국의 지지를 얻지 못했지만 올랑드는 유권자와는 약속을 지킨 셈이 됐다.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IFRI)의 도미니크 모이시 상임고문은 "올랑드는 신출내기 지도자답지 않게 주저함이 없었다"며 "국제무대에 순조로운 첫 발을 내디뎠다"고 말했다.
할 말은 하면서도 지적이고 겸손한 태도는 올랑드의 긍정적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한몫했다. 말쑥한 수트 차림으로 만찬장에 나타나는가 하면 처음 보는 미국 관리들과 음식, 여행 등을 주제로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았다. 로이터통신은 "즉흥적이고 돌출행동을 일삼는 전임 사르코지 대통령과 달리 올랑드는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게 풀어내 호감을 샀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올랑드에 대한 최종 평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AP통신은 "개인적 평판에 기댄 밀월관계는 오래가지 않는다"며 "올랑드는 이제 성장을 옹호하는 외침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구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실력을 가늠할 첫 무대는 23일 개최되는 유럽연합(EU) 정상회의다. 올랑드는 이 자리에서 유로본드 도입 여부를 놓고 메르켈과 다시 한번 격돌한다.
올랑드는 단일금리가 적용되는 유로존 공동채권을 발행해 재정적자 문제를 해소하자는 입장이지만 메르켈은 조달비용 급증과 규제장치 미흡 등의 이유를 들어 완강히 반대하고 있다. 피에르 모스코비치 프랑스 재무장관은 "논란이 되는 모든 사안이 정상회담 테이블에 올려질 것"이라며 "유로본드 문제는 회담의 단연 1순위 의제"라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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