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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2. 고향에 남은 자취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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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2. 고향에 남은 자취 <37>

입력
2012.05.2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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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나아가서 관가의 기미를 살피니 노비 소송은 예나 지금이나 결국은 재물의 문제라 되도록 당사자들이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을 받고는 합의가 되기를 바라는 눈치였답니다. 백여 년 전부터 혈육끼리의 노비 쟁송은 골육상잔이라 하여 형이나 누이가 아우나 여동생을 종으로 부릴 수 없고 인륜에도 어긋나니, 그 아비가 뚜렷한 신분인 경우에는 되도록 면천하여 가족의 예를 지켜줄 것을 권고하여왔다 합니다. 법으로 상대방의 주장이 맞는 일이라 어머니 동이와 저희 남매의 몸값을 치르지 않으면 세 사람은 갑자기 전의의 유 씨 댁으로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 심리를 세 번 하게 되어 있었는데 저희 쪽은 꼼짝없이 졌습니다. 그들은 행패까지 부렸는데, 첫번 심리에서 졌던 며칠 뒤에 유 씨 댁에서 하인이며 일가붙이라고 주장하는 우락부락한 장정들이 나타나 종년을 끌어가겠다며 안채까지 쳐들어왔던 일입니다. 집안에 하인들도 있고 의원에 대기 중이던 손님도 있었는데 그런 패가망신할 일이 벌어졌던 거예요. 저희들이야 울분을 참고 방구석에 처박혀 있었지만 어머니는 반말지거리와 욕설에 온갖 수모를 당했습니다. 아버지가 그때에 할아버지로부터 상속 받은 청주의 선산과 논밭을 넘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노비 일구의 값이 한 사람이 십 년 걸려서 짤 수 있는 무명베가 백여 필이고 한 필에 두 냥이라, 돈으로 따지면 육백여 냥이 되지만 아버지는 당시에 천 냥을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내외 혈육과 일가친척들로부터 스스로를 끊어버렸습니다.

관가를 통하여 다짐 받은 결송 입안과 유 씨 댁의 불망기에 의하여 우리 어머니 동이는 대명천지에 면천이 되었습니다. 그날 어머니와 저는 안채의 방문을 걸어 잠그고 소리 죽여 울었습니다. 제가 열네 살 때의 일입니다. 이듬해 아버지가 서둘러서 신이 오라버니를 장가 들였는데 그가 스무 살 때였으니 양가에서 남정네의 성혼으로는 매우 늦은 나이였지요. 그러나 오라버니는 몇 달도 안 되어 집을 나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올케는 그해에 아이를 가졌고 이듬해 자선이를 낳았지요. 오라버니는 처음에 한양으로 올라간다는 얘기만 흘렸을 뿐입니다. 어머니는 면천하시고 세 해쯤 사셨나요, 아마도 평생에 걸친 종의 신분을 벗어나자마자 기진해버린 듯했지요. 제 남편이 어머니 앓아 누우셨을 적에 신이 오라버니를 찾아서 한양에까지 올라갔지만 혼자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신이 오라버니가 집을 떠나고 세상에도 모든 낙을 잃게 된 연유가 어디 한두 가지뿐이겠어요? 자라면서 손아래 누이인 제게 말하지 못한 사연이 강변의 모래알만큼 가슴 속에 쌓여 있었겠지요.

자선이 어머니는 어떤 분이고, 지금 어디 사시나요?

누이가 길고 어두운 유년기의 이야기를 하면서 정작 내가 궁금했던 그이의 아내 이야기를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에 나는 지목하여 물었다.

올케는 이웃 고을인 금산 양가의 소생이랍니다. 말수 적고 아주 참한 분이지요. 그 댁이 약초 재배로 가세가 일어나서 저희 아버지와 오래 거래하였던 집안이지요. 그러니 오라버니가 집안에 정이 없는데 어찌 배겨나겠습니까? 세상 법도에 지아비가 삼 년 이상 발길을 끊으면 소박이라 하지 않나요. 자선이를 여기 남겨두고 입산 출가했지요. 그것도 들리는 소문이고 간 곳을 모릅니다. 금산에서 자선이를 보러 온 외할머니가 해준 말이라 그러려니 할 뿐이지요.

못된 사람 같으니, 그래도 이곳에는 그의 혈육이라도 한 점 남겨놓았구나 생각하니 섭섭한 중에도 마음이 놓였다. 아직 시집인지 아닌지 스스로 생각해도 어딘가 떳떳하지 못한 이신통 그이의 집에 와서 우리가 부부라는 말도 내세우지 못한 채, 나는 어느 결에 이 씨 댁의 식구가 되어버렸다. 누이는 우리가 길을 떠날 때 아버님의 제삿날을 가르쳐주면서 꼭 오라고 당부했고, 오라버니가 집에 들르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설득하여 자기가 모시고 강경에 가겠노라고까지 말했다. 길 떠난 지 열흘 만에 안 서방과 나는 집으로 돌아왔고, 나는 훗날을 위하여 이신통의 누이와 매제의 이야기를 기억나는 대로 적어놓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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