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단계 사기왕' 조희팔(55)씨 사망과 관련한 의혹이 증폭되는 것은 석연치 않은 사인에다 시신의 소멸로 직접 확인이 불가능한 반면 사망증거들은 완벽하게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위장사망을 다룬 숱한 범죄영화들이 오버랩 되는 이유다.
느닷없는 급성 심근경색
21일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지난해 12월18일 K씨 등 지인 5명과 중국 칭다오(靑島)의 한 중식당에서 양주 두 잔을 겸해 저녁을 먹은 뒤 노래를 부르다 갑자기 흉부와 배쪽 통증을 호소해 120구급차(우리의 119)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되던 도중 사망했다. 급성 심근경색이 사인이지만 조씨는 국내에서 심장 관련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적이 없다.
더욱이 이 인물이 조씨임을 증명할 물증이 없다. 단지 19일 새벽 0시15분쯤 사망선고를 받은 것으로 기록된 사망진단서와 응급진료 기록 등 문서뿐이다. 경찰은 "시신이 옮겨진 남방의과대학병원에도 조씨의 가검물이 없었고 이미 화장돼 유전자 검사도 불가능했다"고 밝혔다. 조씨가 의사, 중국 공안 등 관련자들을 매수해 사망진단서 등을 가짜로 만들고 '위장 장례식'을 치른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미 조씨는 '조영복'이라는 이름의 조선족 남성(53)으로 신분을 바꿔 중국 호구부(우리의 주민등록증)와 운전면허증, 여권 등을 발급 받아 활동했다.
상례에서 벗어난 장례식 동영상 촬영
경찰이 조씨의 사망 증거로 제시한 장례식 동영상을 두고도 해석이 난무하다. 51초 분량의 동영상에는 유리관 속에 누워있는 조씨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장면과 조씨의 아들 딸, 형과 형수 등 가족들이 흐느끼며 유리관 위에 흰 국화를 올려놓는 장면 등이 담겨있다. 경찰은 "조씨의 딸이 장례식에 참석했던 누군가가 찍은 동영상 파일을 보관해오다 지난 10일 압수수색에서 발견됐다"며 "촬영자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결혼식이라면 몰라도 장례식을 동영상으로 담는 경우는 우리 상례상 없는 일이어서 조씨 사망 증거로써 활용할 목적으로 촬영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더욱이 사기 피해자들로 구성된 '바른 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는 "조희팔 사망설은 지난해 말부터 나돌던 얘기"라며 "사건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퍼뜨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진짜 사망'에 무게
사실 위장 사망 사건이 단지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모친과 짜고 딴 사람의 시신을 화장한 뒤 자신의 사망보험금 24억원을 타내려 했던 2010년 '부산 시신 없는 살인'사건은 영화 '화차'와 닮은 꼴이어서 사회적 이목을 끌었다.
이러한 의혹들에 대해 경찰은 "여러 사망증거는 물론 조씨 딸의 일기에도 아버지의 죽음에 따른 슬픈 심경 등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볼 때 자작극일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표창원 경찰대 교수(범죄학)는 "중국은 행정 절차의 위조가 손쉬운 데다 외국인 사망이기 때문에 신원확인 절차도 소홀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경찰이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희팔 사건' 향후 수사는
한편 조씨의 사망 사실이 공개된 뒤 '조희팔씨 사건'을 수사중인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최근 중국 공안에게서 넘겨받은 조씨의 공범인 최모(55)ㆍ강모(44)씨 등이 조씨의 사망으로 행여 입을 닫지나 않을까 우려했다. 3월부터 조씨가 은닉된 범죄 수익금을 추적하고 있는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조씨는 3만여명에게서 총 3조 5,000억원을 끌어들여 순이익만 300억~400억원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며 "조씨 사망으로 차질이 없을 수 없겠으나 최대한 수사력을 모아 은닉 재산을 찾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구=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김지은기자 lun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