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은 최근 혁신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출범시키고 비례대표후보 14명 전원 사퇴를 의결했다. 그러나 구당권파는 의결자체를 원천무효로 규정하고 비대위 체제 자체를 부정하며 당원비대위를 따로 발족시키면서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 와중에 21일 검찰의 중앙당사 압수수색이 진행되자 당 차원에서 이를 전면 거부하면서 또 다른 국면이 전개되는 양상이다. 현재까지 총체적 부실, 부정선거의 근거라 할 수 있는 중복투표, 대리투표 등을 통한 사례가 투표소 전체적으로 전수조사 돼 어느 투표소에서 어떠한 형태의 무효표가 어느 정도의 규모로 이뤄져 비례순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에 대한 상세하고도 종합적인 설명은 별로 없다.
이번 사태 해결의 핵심은 각 개별 투표소의 무효투표를 전수조사해 그것이 비례순위 결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를 먼저 파악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대법원의 국회의원 상실형에 해당하는 최종 선고를 통한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당내 선거 문제로 다수의 비례후보자들을 전부 그만 두라고 하는 것은 어느 나라 정치사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논리가 성립되어 비례후보자가 전원 사퇴한다면 앞으로 어느 정당 비례후보자든지 국회의원에 당선 되어도 개원 전까지는 언제든지 당 내부 의사결정으로 사퇴 당할지 모르는 위험에 항상 노출되게 된다.
이번 중앙위 폭력사태에 대해선 가담자를 찾아내고 또한 부정선거 관련자도 찾아내어 법적 조치를 해야 한다. 그러나 논란의 핵심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사태를 오히려 비례대표 총사퇴라는 측면으로 논란의 논점이 완전히 전환된 데 있다. 비례대표 후보의 각 계파별 국회입성 규모에 따라 당내 지도부 권력구도가 바뀌어 진다면, 역으로 공동지도부의 권력투쟁 속에서 비례 당선자인 각 계파별 헌법기관의 운명이 결정되어 질수도 있는 것이다. 종합적인 명확한 근거가 미흡한 상태에서 비례후보자 별로 똑같은 조건인데, 누구는 사퇴하고 누구는 사퇴하지 않는다면 이것이 과연 공정한 사회인가. 상세한 진상 조사결과 각 후보별로 어느 정도 부정선거의 책임이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전수조사의 결과가 없기 때문에 후보자 별로 그 책임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른 것이다.
이번 비례대표 총사퇴를 주장하는 측은 비례 후보자들이 대한민국 헌법 기관으로서 민주주의 가치를 수호하고 국법질서를 유지하는 국민의 대표기관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것인지, 아니면 부정경선의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니까 국회의원으로서의 자격이 상실되었다는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전자의 근거를 적용하고 어떤 후보에게는 후자의 조건을 적용한다면 당 내부개혁의 명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만약 전자의 경우 국회의원의 자격문제라서 사퇴해야 한다면, 19대 국회에서 공직선거법 제16조 피선거권의 제한에 관한 관련 조항을 신설해야 한다. 비례대표 당선자와 후보자들의 정치적 이념과 노선이 우리나라의 헌법적 가치와 민주적 이념을 실천하기에 부적합해 국회의원으로서의 자격을 획득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한다면, 이것은 이번 부정경선사태와는 별개의 논의이다. 이 부분은 본격적인 의제제기를 통해 또 다른 국민적 합의로 피선거권 제한규정을 신설하면 된다.
국회의원 당선자의 순번이 당 내부의 의사결정으로 하루아침에 뒤바뀌어 당락 자체가 뒤바뀐다면, 다른 지도부가 들어설 경우 또 다른 기준과 근거로 인해 뒤바뀐 당락이 또 다시 바뀌는 결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번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총사퇴의 권고는 바람직한 정치적 결단으로 판단될지 아니면 한국정치사의 또 다른 오류의 아이러니로 기록 될지 훗날 역사가 평가해 줄 것이다. 이번 사태가 진보정당으로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용철 부산대 정치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