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강호정의 애고에코] 당신의 생태계는 얼마짜리인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강호정의 애고에코] 당신의 생태계는 얼마짜리인가

입력
2012.05.20 12:05
0 0

세계적인 드라마 왕국인 우리나라에서 역대 가장 뛰어난 명대사를 꼽으라고 하면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가을동화'에서 원빈(태석 역)이 한 '얼마면 되겠냐?'를 들 것이다. 드라마의 애절한 사랑 내용은 차치하고, 감정까지 값을 매기는 것이 일상인 세상이 되었다고 한탄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큰 힘은 대상물의 가치와 가격에 대한 인식이라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사실 생태학은 돈과는 거리가 먼 학문이고, 여러 가지 개발사업에 반대하는 논리로 널리 이용된다. 우리나라에서 새만금 매립, 천성산 터널 문제, 4대강 사업 등과 같은 논란에서도 잘 나타났다. 우리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그러하다. 몇 년 전 런던 히드로 공항 확장 공사가 반대에 봉착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생태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반응을 분석한다. 예를 들어, 습지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흘러 들어온 물질들을 식물이나 미생물이 분해하고 변환하는 과정에 대해 연구한다. 또 어떤 학자들은 특정 벌이 어떤 식물을 찾아 다니고 왜 그런 습성을 보이는지를 연구한다. 대다수의 대중들은 이런 '생태계의 반응'에 흥미가 있을 리 없고, 따라서 습지나 벌들이 갑자기 사라져도 그냥 무관심하게 지나칠 뿐이다.

하지만 이런 반응들이 실제로는 인간의 이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습지에서는 자연 반응으로 물이 맑아지기 때문에 돈을 따로 들여서 하수처리 시설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또 벌들이 이 꽃 저 꽃을 다니며 꽃가루를 섞어주기 때문에 수많은 과실, 목재, 곡물을 얻을 수 있다. 만일 벌들이 없다면 사람들이 직접 돈을 들여 일꾼을 사서 인공수분을 해야 한다.

이와 같이 생태계에서 일어나는 일 중 인간의 복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을 '생태계 서비스'라고 한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오랫동안 논의해 온 개념이지만 대중들에게는 2005년에 발표된 '새천년 생태계 보고서'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 보고서는 1,000명이 넘는 세계의 유수한 생물학자들이 모여 전세계 생태계의 현 상황을 진단하고 생태계가 인간에게 주는 혜택을 검토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생태계 서비스를 공급, 조절, 지원, 문화의 네 범주로 나누어 자세히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 50여년 동안, 생태계가 인간에게 주는 혜택 24가지 중 4가지만이 개선되었을 뿐 대부분은 아주 심하게 훼손되었다는 것이다. 인간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생태계를 파괴하며 개발을 했지만 결국은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도 반하는 행동을 해온 것이다.

또 학자들은 더 나아가 생태계 서비스의 경제적 가치, 즉 실제 값을 매기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습지가 수질을 개선한다고 했을 때 그 습지의 경제적 가치는 하수처리 시설을 만드는데 필요한 비용으로 대체될 수 있다. 또 사람들에게 어떤 생물을 보존하는데 얼마나 돈을 낼 용의가 있는지를 물어본다면, 그 생물의 무형의 가치가 얼마인지를 돈으로 환산해 볼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쓸모 없는 땅이라고 여겼던 바닷가의 연안습지가 높은 가치를 가진 생태계로 평가되기도 했다.

오래 전 마스터카드의 TV 광고 시리즈가 기억난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며 이를 구성하는 개개 상품들의 가격이 얼마인지 값을 보여주다가 마지막에는 가족이나 친구들 간의 사랑이나 행복은 '값을 매길 수 없다'는 멘트로 끝나는 광고였다. 역설적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생태계까지도 값을 매겨야만 보전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다. 생태계의 서비스와 이의 가격을 정확히 매기고 이를 대중이 이해하게 된다면, 밀어붙이기식 개발 사업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 주위의 생태계는 과연 얼마짜리일까?

강호정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