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역대 대통령에게 에너지 문제의 새로운 해법을 찾는 것은 매력적인 어젠다였다. 일자리, 환경오염, 에너지 해외 의존과 관련한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치인도 이 해트트릭에 성공하지 못했다.
2006년 조지 W 부시는 '에너지 중독'이란 말을 연두교서에 넣었다. 손 쓸 수 없는 유가 고공행진을 두고 미국이 석유에 중독됐다고 고백한 것이다. 그러나 석유업자 출신 인사들을 대거 기용한 부시 정권은 문제 해결에 나서지 못했다. 그보다는 10년에 걸쳐 테러와 전쟁하며, 반미세력 출현의 배경이 된 정권에 엄청난 돈을 지불했다. 그 돈의 일부는 과격세력에게 흘러 들어가 추가 테러로 되돌아왔다. 높은 해외 원유 의존이 결국 미국의 이익에 개의치 않는 해외 권력에 의존하는 것과 같다며 2001년 당시 부통령 딕 체니가 국가에너지보고서에서 지적한 그대로였다. 그 사이 미국의 석유기업들은, 의회가 초과이윤세를 거론할 만큼 기록적인 수익을 거두었다.
부시의 보수정권에 이어 2008년 자칭 진보주의 시대를 연 버락 오바마 정권은 하이브리드 경제를 주창했다. 향후 10년간 미국의 석유 의존도를 절반으로 낮춘다는 의미에서 하이브리드 경제 비전을 제시한 것인데, 아직은 그 성과가 회의적이다.
초당적 전직 대사 모임인 에너지안보외교위원회가 미국이 여전히 원유의 50%를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고 17일 밝힌 것처럼, 미국 경제의 하이브리드는 멀어 보인다. 위원회에 따르면 미국이 지난해 기록한 무역적자 3,270억달러 가운데 에너지 부문이 58%를 차지했는데 이는 역대 최고치이고, 테러와의 전쟁 초기인 2002년의 25%에 비해 두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미국 쇠락의 상징이 된 국가부채 15조6,000억달러의 상당액이 에너지 중독의 대가라고 할 수 있다.
에너지 중독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가 앓는 중병이다. 국제뉴스로 취급된 분쟁 가운데 에너지가 원인인 것이 지난 한 달만 따져도 6건을 넘는다. 아프리카에서 수단이 남수단을 공습한 것은 남수단의 원유 때문인데 유엔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아직 전운이 가시지 않고 있다. 수단은, 남수단의 원유가 자국을 통해서만 수출될 수 있다는 약점을 잡아, 현재 배럴당 1달러인 통행료를 32~36달러로 올리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남중국해의 스카보러섬(중국명 황옌다오) 해역에서 필리핀과 중국이 1개월 넘게 대치한 것도 주변 해역에 원유와 천연가스가 대거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이집트가 1979년 평화협정의 산물인 천연가스 수출의 중단을 선언하면서 이스라엘에서조차 에너지 확보가 국가 안보의 핵심으로 등장하고 있다. 포클랜드섬 주변에서는 아르헨티나와 영국의 긴장이 30년 만에 다시 흐르고 있다. 1982년 전쟁 때는 영유권과 자존심이 핵심 이슈였지만 지금은 주변 해역에 매장된 수십억 배럴의 원유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은 항공모함 2척을 페르시아만 주변 해역에 파견해 세계 원유 수송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을 지키며 이란과의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세계가 에너지 문제로 전쟁까지 치른 이래 에너지는 늘 국가 이익이 충돌하는 최전선을 형성해왔다. 물보다, 피보다 진한 것이 원유였다. 하지만 마이클 클레어 미국 햄프셔대 교수는 최근 펴낸 에서 전세계에서 에너지 분쟁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새로운 상황에 주목하면서 지구가 에너지 과부하에 걸렸다고 진단했다. 주요 국가들이 에너지 지배권 확보를 위해 무력을 사용하려는 새로운 시대가 전개될 것이란 어두운 전망도 함께 내놨다. 19일 주요8개국(G8) 정상들이 비축유 방출로 고유가를 잡겠다고 합의한 것을 보며 자원이 저주인 시대의 모습을 다시 돌아본다.
이태규 워싱턴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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