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시각장애 인권변호사 천광청(陳光誠)이 1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 도착했다. 산둥(山東)성 이난(沂南)현 둥스구(東師古)촌에서 가택연금을 뚫고 탈출한 지 꼭 한 달 만에 가족과 함께 미국 땅을 밟는 데 성공한 것이다.
천 변호사는 이날 오후 8시30분 자신이 머물 뉴욕 맨해튼 그리니치빌리지의 뉴욕대(NYU) 교직원 주거단지 앞에서 새 생활을 시작하는 감회를 밝혔다. 흰색 티셔츠와 황갈색 바지를 입고 오른쪽 다리에 깁스를 한 상태로 목발을 짚은 채 나타난 그는 "최근 7년간 격동의 세월을 보내며 단 하루도 쉬지 못했다"며 "몸과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천 변호사는 "미국이 결정적인 순간 주중미국대사관을 통해 피난처를 제공해 주는 등 도움을 줬고 시민권도 주겠다고 했다"며 감사를 전한 뒤 "중국 정부가 냉정하고 차분하게 대응해 고맙게 느끼며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받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회견 도중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여유도 보였다.
천 변호사는 19일(현지시간) 오후6시 베이징(北京) 서우두(首都)공항에서 아내 및 두 자녀와 함께 유나이티드에어라인(UA) 88편 항공기에 탑승한 뒤 12시간여만에 미국 뉴저지주 뉴어크 공항에 도착했다. 탑승객 중 가장 먼저 내린 그는 천 변호사의 미국 행을 이끈 제로미 코언 NYU 미국-아시아법 연구소장과 미 국무부 직원의 영접을 받았다.
천 변호사는 지난달 19일 밤 감시를 피해 둥스구촌의 집을 빠져 나온 뒤 23일 이난현의 모처에서 자원 봉사자 허페이룽(何培蓉)과 만나, 허씨의 차를 타고 베이징에 입성했다. 이후 인권운동가 후자(胡佳) 등과 상의한 뒤 같은 달 27일 주중미국대사관에 진입했다. 미국과 중국의 협상으로 신변 안전을 보장받고 대사관을 나와 병원에 입원한 그는 중국에 남겠다던 마음을 바꿔 미국행을 택했다. 천 변호사는 NYU 법과대에 방문연구원으로 등록, 법학을 공부하게 된다.
천신만고 끝에 미국에 입국한 천 변호사는 그러나 마냥 행복하진 않은 상황이다. 그는 AP통신과의 통화에서 "수많은 생각이 떠오른다"며 "행복하지 않다"고 말했다. 사실 고향에는 어머니와 형, 조카 등이 남아 있다. 형은 가택연금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고, 조카는 사복경찰과 몸싸움을 하다 체포돼 '살인미수'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천 변호사가 미국에서 중국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긴 힘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인권운동가 모즈쉬(莫之許)는 웨이보(微博)에 올린 글에서 "중국 당국이 천 변호사를 출국시킨 것은 톈안먼(天安門) 시위 23주년인 6월 4일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라며 "관련 보도가 줄면서 사건의 파장이 축소되고 영향력도 위축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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