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 경제가 '상저하고'(上低下高ㆍ상반기에 저조하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회복)의 흐름을 띨 것이란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하반기 경기회복의 가장 큰 근거였던 '유럽 재정위기가 연초 최악을 지나 차츰 안정될 것'이란 기대가 지난주 글로벌 금융불안 재발을 계기로 다시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아직은 상저하고 전망이 우세한 편이지만 종잡을 수 없는 유럽사태의 향방에 따라 자칫 '상저하저'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일 경제전망 수정자료에서 올 국내 경제성장률 전망치(3.6%)를 작년 11월 발표 때(3.8%)보다 0.2%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세계적인 불확실성 탓에 대내외 수요가 전반적으로 약해져 국내 경제가 작년 하반기 이후 둔화를 지속되고 있다"는 게 KDI의 판단이다.
구체적으로 ▦유럽위기 여파로 한국 수출품을 사려는 수입국들의 수요가 약해졌고 ▦환율 등을 감안한 교역조건도 나빠진데다 ▦임금상승이 미미해 국내 소비여력도 둔화됐다는 것이다. KDI는 이에 따라 내수와 수출의 축인 올해 민간소비와 상품수출 증가율 전망도 각각 6개월 전보다 0.4%포인트, 1.8%포인트씩 낮춰 잡았다.
다른 기관들의 시각도 비슷하다. 앞서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지난달 한국의 올 성장 전망치를 3.9%에서 3.4%로 내린 데 이어, 한국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각각 3.7%와 3.8%에서 3.5%로 낮췄다. 다만 KDI의 전망은 지난주 글로벌 금융불안 사태를 겪고 난 뒤 나온 것이어서 좀 더 무게감이 실린다.
하지만 KDI는 올해 상저하고의 전망 흐름은 그대로 유지했다. 성장률과 소비ㆍ수출 증가율 모두 1분기를 저점으로 4분기에 고점을 찍는 형태다.
하지만 이 같은 전망이 유효하려면 세계경제를 뒤흔드는 유럽발 충격이 앞으로 더 이상 악화되지 않는다는 전제가 성립해야 한다. 이한규 KDI 연구위원은 "유럽 사태가 완만히 봉합된다면 우리 경제도 하반기에는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만의 하나 유로존이 깨지는 등 파국이 닥치면 지금의 성장률 전망은 전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에 동의한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종합정책과장은 "상반기보다 하반기의 경기하락 리스크가 덜할 걸로 예상하지만 언제든 돌발변수가 튀어나올 가능성도 여전하다"며 "이번처럼 외국의 선거나 정치적 변수까지 감안해야 한다면 불확실성의 범주가 너무 넓다는 게 문제"라고 평가했다. 그는 "일부 국가의 뱅크런이 금융 전반의 신용마비 사태로까지 번지면 그 때는 경기의 높고 낮음을 떠나 제2의 리먼사태를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기존 전망과 다른 경기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종우 솔로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금처럼 시장의 충격이 반복되면 수치상으로는 하반기 지표들이 소폭 호전돼도 체감경기는 거의 차이가 없는 '상저하저'의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유럽 국가들의 국채 만기가 대거 몰렸던 연초에는 당초 우려보다 상황이 괜찮았던 반면, 요즘은 기대보다 충격이 크게 오면서 갈수록 상반기와 하반기의 차별성이 줄어드는 분위기"라며 "경기가 자칫 '상중하중'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우리 경제가 작은 충격에는 어느 정도 내성이 생겼지만 리먼사태와 같은 본격적 대외충격에도 내성을 갖췄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말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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