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 어머님이랑 아기랑 다 반가이 보고 가고자 하다가 장수가 혼자 가심 날 못 가게 하시니, 못 가서 못 다녀가네. 이런 민망하고 서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꼬?”
500년 전 조선시대 부부의 애틋한 사랑을 담은 한글 편지가 나왔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은 대전 유성구 안정 나씨(安定 羅氏) 묘에서 미라와 함께 출토된 조선시대의 한글편지를 복원했다고 20일 밝혔다. 안정 나씨 종중분묘를 이장하던 중 미라 4기와 조선시대 의복 등 140여점이 출토됐는데, 한글편지는 나신걸(羅臣傑ㆍ15세기 중반~16세기 전반 생몰 추정)의 부인 신창 맹씨(新昌 孟氏) 목관에서 나왔다.
이 편지는 지금까지 발견된 한글편지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종전에는 순천 김씨 묘에서 출토된 한글편지(충북대박물관 소장)로 1555년에 작성됐다. 대전 선사박물관은 ▦나신걸의 동생 나문걸이 1513년에 무과에 합격한 점 ▦신창 맹씨는 세종 때 명재상인 맹사성 증손자의 차녀인 점 ▦편지 내용 중 경어체 ‘~하소’와 단어의 용례가 임진왜란 이전 16세기의 언어적 특징을 보이고 있는 점 ▦편지에 나오는 ‘영안도’는 함경도의 옛 지명으로 성종 3년(1,470년)에 개칭된 점 등에 비추어 1,470년 이후 1,500년대 초반에 씌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발굴 당시 한글편지 2점은 접힌 상태로 신창 맹씨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편지에는 나신걸이 함경도 경성 군관으로 부임하면서 신창 맹씨에게 농사 등 가정사를 챙길 것을 당부하고 부인을 보지 못하고 떠남을 안타까워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분(화장품)하고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내네. 집에 못 다녀가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에 있을꼬 울고 가네"라는 등 경어체로 볼 때 조선 전기에 부부가 서로 존칭했음을 알 수 있다. 송귀근 국가기록원장은 “당시 분과 바늘은 매우 귀한 수입품이어서 남편의 아내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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