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부동산공인중개업소를 운영하는 최명식(43)씨는 ‘투잡(two-job)족’이다. 주택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지난 1년 새 중개건수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급감해 임대료라도 벌충할 생각으로 최근 대리기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최씨는 “중개수수료 수입만으론 생활비는 고사하고 사무실 월세와 운영비도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있던 직원마저 내보냈지만,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서 6년간 부동산중개업을 해온 김이순(38)씨는 최근 사무실 문을 닫고 치킨가게를 새로 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제나저제나 하며 버텼지만, 쌓이는 적자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힘들게 공부해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땄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접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치킨가게가 몸은 고되지만 매일 매출이 일어나 현금을 만질 수 있으니 차라리 마음은 편하다”고 했다.
대표적 서민 업종인 부동산 중개업계가 거래 급감의 쓰나미 속에서 휘청거리고 있다. 분양 열기가 조금 살아 있는 지방은 그나마 나은 편이지만, 거래 침체가 장기간 이어져 온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선 몇 달 동안 계약서 1장 써보지 못하는 업소가 부지기수다. 이렇다 보니 올해 1분기 전국 부동산중개업소 휴ㆍ폐업 건수(1,599)가 지난해 상반기 전체 건수(1,642)에 육박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거래건수가 바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1~4월 서울지역 아파트 매매거래량(신고일 기준)은 총 1만2,658건으로, 2008년(3만1,380건)과 비교하면 거의 3분의 1 수준이다. 최근 6년 동안 가장 적은 거래량이다. 본격적인 이사철인 4월의 거래건수 또한 3,802건으로 작년 같은 달(5,101건)보다 1,300여건이나 감소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더 이상 버티지 못해 문을 닫거나 사무실 면적과 직원을 줄여가는 ‘다이어트’ 중개업소가 늘고 있다. 부동산 온기가 아직 살아있는 지방을 기웃거리다 아예 ‘탈(脫)서울’에 나서는 곳도 있다.
30여개 중개업소가 몰려 있는 서울 송파구의 한 단지 내 상가에선 올 들어 3곳이 문을 닫았고 10여 곳은 주인이 바뀌었다. 서울 잠실동에서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박모(50) 대표는 올해 초 직원 3명을 모두 내보내고 대신 집에 있던 아내를 끌어들였다. 사무실 크기도 절반으로 줄였다. 박씨는 “한때 1억원을 웃돌았던 잠실 일대 중개업소 권리금이 지금은 2,000만원에도 못 미친다”며 “대다수 중개업소가 개점휴업 상태”라고 전했다.
서울 불광동에서 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이희수(43)씨는 조만간 정부부처가 대거 이전하는 세종시로 사무실을 옮길 생각이다. 김씨는 “잠원동에서 중개업을 하는 친구와 함께 세종시로 내려갈 계획”이라며 “가만히 앉아서 죽기보다는 뭐라도 출구를 찾아야겠다는 판단에서 지방행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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