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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View/ 정규교육 안 받은 창작자들 "인터넷에선 칭찬 많이 받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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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View/ 정규교육 안 받은 창작자들 "인터넷에선 칭찬 많이 받아요"

입력
2012.05.18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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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ㆍ고등학교 때 미술시간이 즐거웠다. 하지만 학원을 다니며 입시미술을 배우는 친구들에 비하면 점수가 좋지 않았다. 대학교는 공대, 대학원은 사회학과를 나왔다. 단 한번도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그의 그림은 인터넷에서 조용한 화제가 되고 있다.

'그림 그려 퍼주는 아티스트'로 알려진 이미영(27)씨. '어슬렁'이라는 닉네임처럼 그는 도시와 세계 곳곳을 걸으며 풍경을 그린다. 그림은 저작자만 밝히면 누구나 퍼가서 사용할 수 있도록 인터넷 사이트 '어슬렁의 여행 드로잉(traveldrawing.cc)'에 공개했다.

"정규교육은 정답을 가르치니까, 거기서 가르쳐주는 정답처럼 그리지 못하면 자신감이 없어져 '나는 그림을 못 그려' 하고 생각하게 돼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창작의 욕구는 있거든요."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월부터다. 인권 만화가 이동수씨가 강의한 '야금야금 한쪽 만화 그리기', 참여연대의 '서울 드로잉' 강좌를 통해 그림을 배웠다.

폴란드에 출장을 갔다가 일을 마치고 자비를 들여 동유럽과 지중해를 여행하면서 그림을 그려 라는 책으로 냈다. 인쇄비는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십시일반 기부하는 '텀블벅(tumblebug.com)'이라는 소셜펀딩 사이트에서 모았다. 인쇄된 책은 작은 서점에서 팔고, 디지털 버전(PDF 파일)은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했다. 그 동안 그린 그림을 모아 전시회도 열었고, 최근에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누구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의 강연도 종종 한다.

이씨처럼 정규교육을 받거나 제도권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고 예술활동을 하는 이들이 최근 부쩍 늘고 있다.

SK커뮤니케이션즈에서 근무하며 매일 한 장의 그림을 그려 페이스북과 블로그(lovesera.com/tt) 등을 통해 공개하는 정진호씨도 그런 경우. 정씨는 완성된 그림뿐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과정을 스케치 단계부터 채색까지 단계별로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고, 역시 누구나 저작자만 밝히면 퍼갈 수 있도록 공개한다. 자신처럼 비전문가도 누구나 쉽게 따라 그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 역시 정식 미술학원에서 배우지 않았다. 1년 전 이라는 책을 한 권 사서 매일 1시간씩 그 책에 나온 그림을 똑같이 그리면서 배웠다. "매일 출근을 1시간 먼저 해서 그림을 그립니다. 여태까지 500시간 넘게 그렸죠." 그는 사내 직원들을 위해 '1인 출판'을 하는 방법을 직접 작성했다가 인터넷의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했는데, 이를 보고 이미영씨는 책을 출판할 수 있었다.

오래 전부터 정규 코스가 아닌 인터넷을 통해 데뷔한 대중 예술가들은 많았다. 대표적인 경우가 mp3 파일을 공개해 데뷔한 가수'조PD'와 인터넷 소설가 '귀여니'다. 이후 신춘문예나 문예지를 통한 정식 등단이 아닌 인터넷 연재를 통해 데뷔하는 것이 소설가가 되는 새로운 길로 정착됐고, 자신의 블로그에 연재하던 만화를 포털 사이트에 연재하면서 데뷔하는 '웹툰 만화가' 들도 생겼다.

하지만 이미영씨와 같은 새로운 창작자들은 이들과도 좀 다르다. 우선 "빅히트 작품을 내놓아 대박을 치겠다"는 생각보다는 창작과 나눔의 기쁨 자체가 목적인 경우가 많다. 창작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은 소셜 펀딩으로 모은다. 여기에 '인터넷을 통해 배웠으니, 내 작품도 인터넷으로 나눈다'는 의식이 있다. 유튜브, 비메오(vimeo) 같은 동영상 공유 사이트, 피카사, 플리커 같은 사진공유 사이트, 사운드 클라우드 같은 음악 공유 사이트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창작물을 보여주고 인정 받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켜준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이 운영하는 '창작블로그'(story.aladin.co.kr)에는 정식 작가와 아마추어 작가들이 작품을 연재하고 있다. 연재물은 종이책으로 출판하는 경우도 많지만 1,000원 정도의 저렴한 전자책으로 출판하거나 아예 무료서적으로 공개하는 사람도 많다.

이미영씨는 "과거 르네상스 시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매우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살았지만 산업화 이후 분업 체계가 확립되면서 예술은 전문가들만 하는 것이고 일반인들은 이를 소비만 하는 세상이 됐다"면서 "점심 시간 잠깐 짬을 내 작은 드로잉 노트와 연필을 가지고 청계천을 그려보는 것부터 시작한다면, 누가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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