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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orld/ 시민결합, 동성결혼 합법화로 가는 징검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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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orld/ 시민결합, 동성결혼 합법화로 가는 징검다리?

입력
2012.05.1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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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결혼(same-sex marriage) 합법화를 지지한다.”

9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깜짝 발표가 전 세계적인 파장을 낳고 있다. 세계 최강 미국의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결혼은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라는 전통적 통념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미 언론은 “오바마의 발언은 역사적 중요성을 띤다”고 평가하면서도 실제 법안 추진 가능성엔 낮은 점수를 매겼다.

동성결혼 다시 수면 위로

동성결혼 합법화의 역사는 일천하다. 서구사회가 아무리 개인의 평등권을 중시한다 해도 기독교적 윤리관에 정면 도전하는 동성결혼은 보수적으로 다룰 수밖에 없는 이슈다. 동성결혼이 수면 위로 부상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20세기 후반 ‘LGBT’(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로 대변되는 성(性) 소수자 운동이 세를 불리면서 동성부부의 법률적 인정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네덜란드 의회는 2000년 “결혼은 이성 혹은 동성의 두 사람에 의해 이뤄질 수 있다”는 내용을 법률에 명시하기에 이른다.

2001년 4월1일 0시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에서는 특별한 결혼식이 거행됐다. 주례를 맡은 욥 코헨 암스테르담 시장 앞에 선 신랑ㆍ신부는 놀랍게도 동성애자 네 쌍이었다. 네덜란드가 이날을 기해 동성결혼을 인정하면서 세계 최초의 합법적 동성부부가 탄생한 것이다. 이후 벨기에 스페인 노르웨이 등 총 11개국이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미국의 동성결혼 논의는 유럽에 비해 뒤늦은 감이 있다. 동성결혼에 관한 미 연방정부의 공식 입장은 ‘불가’ 다. 1996년 빌 클린턴 대통령 때 만들어진 ‘혼인보호법(DOMA)’은 결혼의 성별을 남녀로 규정하고 있다. 다만 정부는 구속력을 연방법으로 강제하지 않고 각 주(州)의 판단에 맡겼다. 정치적 휘발성이 강한 탓이다. 동성결혼이 합법화하면 연방정부는 이들에게 연금, 건강보험, 세금 공제 등 1,100여가지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 그 결과 미국에서는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주(6개주+워싱턴D.C.)가 있는 반면, 38개주는 이성간 결혼만을 합법으로 제한하는 조례나 법 조항을 두고 있다.

평등과 분리의 절충, 시민결합

물론 동성결혼,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도 엄존한다. 세계적으로 76개 국가는 동성애 자체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등 5개국은 동성애자를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비판을 감안해 동성결혼 합법화의 과도기적 단계로 등장한 개념이 ‘시민결합(civil union 또는 partnership)’이다.

시민결합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신임 대통령과 배우자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가 이 방식으로 동거관계를 유지해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주목을 받았다. 시민결합은 느슨한 형태의 결혼이라 할 수 있다. 법적 결혼관계는 아니지만 사실상 일반 기혼자에 준해 상속 이혼 입양 등의 권리를 폭넓게 인정한다. 예를 들어 영국은 2004년 ‘시민 동반자법’을 채택했는데, 동성 커플이 결혼서약서와 유사한 문서에 서명할 경우 부부의 권리를 모두 부여했다. 덴마크가 89년 ‘파트너 등록제(registered partnership)’란 이름으로 시행한 이후 프랑스 독일 핀란드 등 20여개 나라와 미국(8개주) 호주 멕시코 등의 일부 지역에서 허용되고 있다.

시민결합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지지자들은 결혼이란 단어에 담긴 종교적 색채를 탈피하고 동성결혼의 대안으로서 시민결합의 기능을 중시한다. 반면 용어를 차별하는 자체가 평등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있다. 이들은 시민결합을 50년대 미국의 분리ㆍ평등 정책(separate but equal)에 비유한다. 교육 직업 등에서 흑인과 백인을 동등하게 대우하되 인종은 분리하겠다는 발상과 똑같다는 것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낸시 스콧은 “결혼(marriage) 외에 결혼을 대체할 수 있는 단어는 아무 것도 없다”고 주장한다.

동성결혼을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첨예하다. 때문에 오바마의 합법화 지지 표명은 11월 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적 노림수의 성격이 짙다. 하지만 미국사회가 동성애에 우호적 입장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혼인보호법 제정 당시 68%에 달했던 동성결혼 반대 비율은 16년 만에 48%로 20% 포인트나 줄었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의 결단은 주요 이슈에 대한 미국사회의 빠른 인식 변화를 반영한 것”이라며 동성결혼 합법화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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