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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사당동 더하기 25' 어떤 소설보다 극적인… 가난, 그 25년의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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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사당동 더하기 25' 어떤 소설보다 극적인… 가난, 그 25년의 보고서

입력
2012.05.18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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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당동 더하기 25/조은 지음/또하나의문화 발행ㆍ335쪽ㆍ2만원

올해 정년 퇴임하는 조은 동국대 교수는 조금 남다른 방식으로 사회학 연구를 시도해온 학자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건들, 연관성을 짐작하기 힘든 사회적 행위들을 이론의 틀을 갖춰 정리해내는 일반적인 연구와는 달리, 한국전쟁 때부터 50년 동안 자신의 기억을 소설의 형태로 털어 놓는다거나(<침묵으로 지은 집> ) 1986년부터 무려 22년 동안 사당동의 재개발 과정을 통해 도시빈민의 가난한 삶을 맨살 그대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내놓았다. 그는 사회학자이면서 때로 사회학 논문보다 더 명징하게 세상을 드러내 보여주는 작가이자 감독이었다.

<사당동 더하기 25> 는 그가 3년 전 내놓은 다큐 '사당동 더하기 22'에 담았던 이야기들을 '가난'을 큰 주제로 삼아 글로 더 자세하게 풀어낸 책이다. 다큐 이후 3년이라는 시간이 더 흐르는 동안 추가로 취재한 내용도 담았다.

25년이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조 교수의 작업 공간이었던 서울 사당동은 명동, 무교동 등의 불량 주거지 정비사업 때 쫓겨난 사람들의 대체 거주지였다. 말이 거주지이지 처음 빈민들이 내던져진 1960년대 중반만 해도 그곳은 호랑이가 나온다고 할 정도로 울창한 국유 삼림에 불과했다. 이후 단지 집값이 싸다는 이유로 흘러 들어온 수많은 사람들, 시골서 상경한 일용직 노동자들, 이혼했거나 남편을 병으로 먼저 떠나 보낸 여성 가구주 등 전형적인 도시 빈민들이 발 디딜 틈도 없이 혼재해 고단한 몸을 눕힌 곳이었다.

책은 사당동에서 살다가 재개발로 떠난 정금선 할머니 가족 등 서울 재개발 지역의 삶을 꼼꼼하게 보여준다. 사당동 사람들은 가난하다. 전기세 수도세를 가지고 아귀다툼을 벌이고 '대추나무 연 걸리듯 하는' 빚을 안고 산다. 하지만 없기 때문에 서로 돕고 사는 정서를 갖고 있다. 변변한 놀이터나 장난감도 없는 아이들에게 이곳은 온 동네가 하나의 놀이터이기도 하다.

저자와 조교들은 사당동 사람들의 인생 이야기를 채록해 가다가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 이야기를 되풀이해 듣는 '포화점'에 이르는 경험을 한다. 그들이 왜 그토록 직장을 바꾸는지, 어떻게 이혼하게 되었는지, 사회 이동의 출구는 무엇인지, 여성 가구주의 삶은 어떤지, 그리고 가난하지만 단란한 가족의 삶의 조건은 무엇인지를 일반화할 수 있다고 느낀 것이다. 그들은 자의처럼 보이지만 실은 타의나 마찬가지 이유로 직업을 전전했고, 빚 때문에 이혼에 내몰렸다. 그들의 유일한 삶의 출구는 결국 자식이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공부를 시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연구 과정에서 저자나 그의 손발이 되어 준 조교들이 부닥친 갈등을 털어놓는 대목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재개발 사업이 지역주민에 미친 영향'이라는 프로젝트의 경우 연구 기간인 1년 반 만에 철거가 완료돼야 제대로 된 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다. 그래서 철거 재개발이 예정된 시일에 되기를 바라는 마음 한편에서는 주민을 위해 철거가 미뤄졌으면, 그 사이에 좀더 주민들이 이익을 보는 해결책이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충돌한다. 빈민운동에 더 친근감을 느끼는 대학원생들에게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절대 운동에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는 것도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연구할 때 누구나 고민해야 할 문제다.

이 책은 도시 빈민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같은 소설처럼 극적이지 않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저자가 중립적인 연구자의 마음으로 담담하게 있는 그대로를 서술했기 때문이다. 너무도 단단한 족쇄여서 도저히 벗어 던질 수 없는 가난, 어처구니없지만 울분을 삼킬 도리밖에 없는 현실, 구차하면서도 어떤 때는 또 살 만한 가치가 있는 여러 얼굴의 삶 자체가 어떤 소설이나 영화보다도 극적인 것이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많은 논쟁을 불렀던 미국 인류학자 오스카 루이스의 '빈곤 문화'를 상기시킨다. 가난의 대물림을 사회적인 요인보다, 잦은 폭력이나 미래에 대한 계획 부족, 약한 직업윤리, 알코올 중독, 도박 등 빈곤의 문화로 설명하는 루이스를 향해 그는 '빈곤 문화가 있는 것이 아니라 빈곤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가난을 설명하는 데 가난 그 자체만큼 설명력을 가진 변수는 없다'며 결국 중요한 것은 '가난의 구조적 조건'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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