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번역가 성귀수(51)씨는 프랑스 추리소설의 고전 '아르센 뤼팽 시리즈' 전문 번역자로 유명하다. 모리스 르블랑(1864~1941)이 생전 30여 년에 걸쳐 발표한 작품 전체를 번역해 2003년 <아르센 뤼팽 전집> (전 20권)을 펴냈다. 특히 시리즈 마지막 작품인 <아르센 뤼팽의 수십억 달러> 를 번역할 땐 잡지에 연재된 본래 원고 중 단행본에 누락된 부분을 프랑스 지인을 통해 어렵게 구해 넣기도 했다. 아르센> 아르센>
성씨가 새로 번역 출간한 <아르센 뤼팽의 마지막 사랑> 은 뤼팽에 대한 그의 애정 어린 집념이 다시금 발휘된 책이다. 르블랑의 미공개 유고를 4년 간의 노력 끝에 파리에서 비밀리 입수해 번역했다. 뤼팽 시리즈의 새로운 최종작인 이 책은 15일 한국과 프랑스에 동시 출간됐다. 이미 저작권이 만료된 작품이라 세계 최초 출간도 가능했지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뤼팽의 '조국'과 보조를 맞췄다. 아르센>
원고 입수 과정에 자못 곡절이 많았던 모양이다. 성씨가 "자세한 경위는 밝힐 수 없다"며 조각조각 내놓은 설명을 종합하면 이렇다. 유족을 비롯한 누구도 그 존재조차 몰랐던 원고가 1996년 발견됐다. 르블랑 전기를 쓴 뤼팽 전문가 자크 드루아르가 자료 조사 중 우연히 르블랑 가문의 서류함에서 원고 뭉치를 찾은 것이다. 유족과 극소수 연구자만 열람한 이 비공개 원고를 성씨가 구하러 나선 때는 2005년. 4년 간의 천신만고 끝에 그는 2009년 파리의 한 문서보관 창고에서 우연반 필연반으로 원고를 찾았다. 그것은 봉투에 담긴 채 고서적 꾸러미에 끼워져 있었다. 성씨는 "정체를 밝힐 수는 없지만 도와준 사람이 있다"며 "도둑질 같은 비합법적 수단을 동원하진 않았다"며 웃었다.
그렇게 성씨의 손에 들어온 것은 160쪽 분량의 타자 원고 사본. 바로 출간이 가능한 수준으로 편집됐으며, 곳곳에 르블랑이 자필로 교정한 내용이 남아 있다.(영인본 일부가 이번 책에 실렸다) 성씨는 "출판사가 책을 내기 앞서 작가에게 전달한 교정쇄로 보인다"며 "마지막 쪽까지 교정 흔적이 있는 걸로 봐서 완성본에 가깝다고 추정된다"고 말했다.
르블랑의 손녀는 원고가 발견된 지 16년이 지난 올해 초에야 출간을 결정했다. 유작에 관한 작가의 유언이 없었고, 고인의 작품 저작권이 유효한 시기에 미완성 원고를 출간하면 '상업적 잇속을 차린다'는 비난을 받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현지 출판계의 추측이다. 성씨가 개인적 추측을 보탰다. "이 소설에 나오는 뤼팽의 고조부는 나폴레옹을 모셨던 장군입니다. 그는 상관이 하사한 잔다르크의 비망록을 후손에게 물려주며 당부합니다. '탐욕에 가득한 세상에 이 책을 내놓지 마라.' 손녀는 이를 할아버지의 유언으로 여긴 것 아니겠어요?"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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