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사찰을 자행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설계자로 지목된 박영준(52ㆍ구속)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검찰에 소환됐다. 지원관실의 설립 목적은 이명박 대통령을 위한 '친위조직'이며, 불법사찰 사항의 '비선 보고' 종착지가 이 대통령이라는 문건이 드러난 가운데, 검찰이 박 전 차관 수사에서 그 실체를 규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박윤해 부장검사)은 17일 박 전 차관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검찰이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 대가로 억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이미 구속한 박 전 차관을 상대로 불법사찰 개입 여부에 대해서도 본격적인 확인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박 전 차관은 2년 전 불법사찰 1차 수사 당시에도 "불법사찰 배후세력 중 한 명"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1차 수사팀은 그를 단 한 차례 소환조사도 하지 못한 채 맥없이 수사를 종결했다. 2차 수사팀 관계자도 "박 전 차관은 참고인 신분으로 (피의자로) 신분 변화는 쉽지 않다"며 선을 긋고 있지만, 2년 전 수사 실패로 자존심을 구겼던 검찰로서는 이번엔 쉽게 물러서지 않을 전망이다.
검찰은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불법사찰 과정에 박 전 차관이 개입했다는 문건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박 전 차관이 지원관실의 불법사찰 증거인멸이 이뤄진 2010년 7월7일, 이를 주도한 최종석(42ㆍ구속기소) 전 청와대 행정관과 차명폰으로 통화한 정황도 포착한 상태다. 1차 수사에서 실패한 불법사찰의 '윗선' 규명에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은 마련된 셈이다. 문제는 형사적으로 박 전 차관을 기소할 만한 수준의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다.
박 전 차관은 MB정권 출범 직후인 2008년 2월부터 6월까지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으로 있으면서 지원관실의 업무를 설계하는 브레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과의 권력다툼으로 같은해 7월 지원관실 설치를 보지 못하고 물러났지만, 지원관실의 조직 체계, 인적 구성, 비선 보고 라인까지 그가 모두 구상했다는 게 정설이다.
특히 문건에서 나타났듯 지원관실이 이 대통령의 '친위조직'으로 활동하기 위해 초법적 권한을 부여받는 데도, 비선 라인에서 지원관실을 손쉽게 부리기 위해 이영호(48ㆍ구속기소)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을 천거하는 데도 박 전 차관의 영향력이 작용한 것으로 검찰은 의심하고 있다. 검찰로서는 아직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불법사찰의 윗선을 규명하기 위해 박 전 차관을 디딤돌로 삼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더구나 검찰로서는 지원관실에서 작성된 문건에 등장하는 '특명사항은 VIP(이 대통령)께 절대 충성하는 친위조직이 비선에서 총괄 지휘, VIP보고는 공직윤리지원관→BH(청와대) 비선→VIP(또는 대통령실장)'라는 문구의 실체 파악을 위해 박 전 차관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문건상 비선 보고의 종착지인 VIP가 누구인지는 특정됐지만, 이를 법적으로 증명하기 위해서는 중간다리인'BH 비선' 규명이 선행돼야 하고, 이를 처벌할 수준의 증거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검찰이 이번에도 박 전 차관의 연루 사실을 규명하지 못한다면 이 사건의 핵심 의혹인 'BH 비선 보고'의 실체는 또 다시 의혹으로만 남게 되고, 국기문란 사건인 불법사찰을 조종한 배후세력 규명과 처벌도 요원해지게 된다.
권지윤기자 legend816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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