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사찰의 최종 보고 라인에 이명박 대통령의 이름까지 거론되고 있지만, 검찰의 수사는 청와대 근처로도 뻗지 못하고 있다. 특히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사건 개입 정황을 보여주는 여러 진술이 나왔는데도 검찰은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어, 수사 의지 자체를 의심받는 모양새다.
민정수석실이 불법사찰 사건 수습에 개입했다는 정황과 진술은 검찰이 재수사에 착수한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최종석 전 청와대 행정관은 이 사건에 대한 청와대의 개입설을 폭로한 장진수 전 지원관실 주무관에게 "(법정에서 사실을 말하면) 민정수석실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언급했고, 류충렬 전 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은 장씨에게 5,000만원을 건네면서 "민정수석실 장석명 공직기강비서관이 마련한 돈"이라고 강조했다.
이 사건의 '키맨'인 진경락 전 지원관실 기획총괄과장은 격한 감정을 숨기지 않으면서 민정수석실을 언급했다. 검찰이 확보한 그의 교도소 접견기록에는 "민정수석실의 세 사람도 수갑을 채워 여기로 데려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나와 있으며, 그는 "나를 보호해 주지 않으면 현 정권이든 MB든 불살라 버리겠다"고 발언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 전 과장은 최근 적극적인 태도로 민정수석실의 당시 역할 등에 대해 진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이렇게 널린 수사 단서를 대하는 검찰의 태도다. 검찰 관계자는 "(진 전 과장의 진술은 있지만)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 등 다른 관련자들이 진술을 하지 않거나, 진술 내용이 엇갈려 성과가 없다"며 뒷짐만 지는 듯한 모습이다. 진 전 과장의 진술 등을 근거로 계좌추적이나 청와대 관계자 소환 등을 통해 관련자들을 압박하는 방법이 있지만, 검찰은 "아직 민정수석실 수사를 진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말로 모든 가능성을 일축했다.
수사 인력까지 재충원된 상황에서 유독 민정수석실에 대한 수사만 속도가 나지 않자 당시 민정수석이 권재진 현 법무부장관이기 때문에 검찰이 의도적으로 수사를 안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의혹은 민정수석실과 수사기관의 업무를 조정하던 당시 민정2비서관이 김진모 현 서울고검 검사라는 점에서도 설득력을 얻는 분위기다. 하지만 검찰 관계자는 "최근 공개된 수백여 건의 불법사찰 문건을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수사에 힘이 부친다"며 "(민정수석은 고사하고) 민정수석실 비서관도 못 볼 형편"이라고 항변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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