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이가 떠나간 뒤에 걱정과 슬픔이 있거나 불안하거나 외로울 적이면 '사람이 하늘이다, 사람이 하늘이다, 사람이 하늘이다', 중얼거리면서 염주를 헤아리곤 했다.
이건 어머님이 남기신 거예요.
누이가 다시 눈물을 비치면서 일어나 잠시 자리를 비웠더니 곧 돌아왔다. 그녀는 똑같은 모양의 향나무 구슬 아홉 개가 꿰어진 염주를 갖고 돌아왔던 것이다. 나는 어쩐지 가슴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렸다. 신통의 어머니에 대하여 들은 바도 없고 같은 물건을 아들과 딸에게 남겼다는 얘기는 처음부터 몰랐으며, 더구나 그런 물건을 나에게 주었다는 사실이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같은 시기에 깎은 것으로 보이는 쌍둥이 같은 누이의 염주에는 다만 글씨가 새겨져 있지 않았다.
이 글은 이녁을 위하여 오라버니가 새겼군요.
그이가 천지도에 입도한 걸 알고 있었나요?
갑오년 난리 터지기 한 해 전에 이 고장에서 먼저 큰 변이 일어났습니다. 보은 대집회라고들 하는데, 전국에서 도인들이 그야말로 구름같이 몰려와 수만여 명이 들고나며 한 달 동안이나 머물렀거든요. 천지도는 억울하게 죽은 교주 이하 모든 도인들이 죄가 없으니 침학하지 말아달라고 한양의 광화문에서도 상소를 올리고 소란이 있었다지요. 그 무렵에 도인들의 집회가 파하고 나서 큰오라버니가 문득 나타나서는, 아우가 출세할 기회가 왔다면서 그가 천지도의 으뜸가는 행수들을 잘 안다니 관가에 발고하면 자신의 죄는 사면되고 벼슬까지 얻게 될 것이라 하였어요. 그리고 너희들도 입도했다면 가산은 물론이오 목숨조차 부지하지 못할 거라고, 그래서 남편과 저는 작은오라버니가 입도한 것은 맞지만 집을 떠난 지 오래라 행적을 알 수 없고 우리도 사실 천지도에 입도한 바 없다고 하였지요.
이 서방은 관에서 자기를 잡으려 하는 것을 알고 있던가요?
그전에 집에 들렀을 때 큰오라버니 얘기를 전했더니 '그자는 비인(非人)이다' 한마디만 하더군요. 실은 큰오라버니와 저희 남매는 어머니가 다르답니다. 큰오라버니는 아버님 생전에 집에 오지도 못하게 했지요. 저희 집안의 가슴 아픈 사연이긴 합니다만…… 저는 신이 오라버니 생각을 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집니다. 다른 고장에서야 그의 내력을 모르니 신분을 속이고 돌아다닐 수는 있겠지만, 보은 인근에서는 그가 누구인지 다들 아니까 고향에 돌아와 살 수도 없게 되었지요. 그러니 날이 아주 저문 뒤에야 찾아와 이 방에 들었다가 외출도 못 하고, 자고 먹고를 되풀이하다가 떠나곤 하는 거랍니다. 이렇게 좋은 아낙이 있는데 눌러앉아 사시지 않고 참으로 우리 오라버니는 청계 도깨비가 씌었나 봐요.
나는 누이와 더불어 저녁이 되는 줄도 모르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중에 송 의원이 함께 앉아서 그가 장인어른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나 신통의 젊은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사양하다가 못 이겨 그 댁에서 저녁을 먹었고, 주막이나 여각에 나가 묵겠노라 하였으나 그럴 수 없다며 의원 내외가 붙잡아서 안 서방은 행랑으로 건너가고 나는 그 손님방에서 잤는데, 다시 누이의 권고로 이틀을 더 묵게 되었다.
첫째 날 자고 일어나 세수를 마치고 가족들과의 아침밥을 기다리고 있던 중에 누이가 아이들 셋을 데리고 내 방에 들어왔다. 먼저 여섯 살, 여덟 살이라는 남매가 각각 까치두루마기에 색동 치마저고리 곱게 입고 내게 큰절을 올렸고, 길게 땋은 머리에 다홍색 제비댕기를 드리운 처녀가 수줍은 듯이 섰다가 아이들의 절이 끝나자 내 앞에 혼자 서서 큰절을 올렸다. 누이가 아이 셋을 모두 내보내고는 내 곁에 다가앉았다.
모두 예쁘지요? 앞에 둘은 제가 낳았구요, 나중의 그 아이가 누구겠어요?
예? 그 처녀가 다 되었던……
금년 열세 살입니다. 신이 오라버니의 딸이랍니다.
그럴 줄을 내 몰랐단 말인가. 삼례에서 우리가 만났을 적에 이신통이 나이가 몇이었으며, 아무리 시골이라 하나 이렇게 포실한 고을의 중인 집안에서 그때까지 그이를 장가들이지 않았을 리가 없잖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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