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든 마주칠 만한 인물들인데 특별하게 느껴지고, 지극히 일상적인 대사들이 오가는데 낯설기만 하다. 홍상수 감독의 열 세 번째 장편영화 '다른 나라에서'는 그런 그의 전작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반복과 변주로 평범한 듯 범상치 않은 삶의 순간을 포착해 전달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17일 오전(한국시간) 개막한 제65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홍 감독의 전작들을 뒤섞은 듯하다. 전북 변산 모항을 배경으로 인물들의 관계도를 그려나가는 얼개는 '해변의 여인'(2006)을 닮았다. 빚쟁이를 피해 엄마(윤여정)와 함께 모항으로 온 영화과 학생 원주(정유미)가 쓴 단편 시나리오 세 개를 옴니버스로 담아낸 '액자영화' 형식은 '옥희의 영화'(2010)를 떠올리게 한다. 동일 인물인 듯하면서도 전혀 다른 인물을 등장시켜 연관성이 있는 듯하면서도 독립적인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은 '옥희의 영화'와 '북촌방향'(2011)을 연상케 한다. 한국 배우들이 스크린을 점거하고 있는데도 간단한 영어 대화가 대사들의 주를 이룬다는 점이 그나마 차별화된다.
영화 속 세 개의 에피소드는 프랑스 여인 안느(이사벨 위페르)가 주인공인데 각 이야기마다 그의 사연과 직업이 다르다. 안느가 다른 모습으로 이야기를 이끌 때마다 안느 주변의 인물들도 조금씩 다른 위치에서 조금은 다르게 표현된다.
첫 번째 이야기 속 안느는 프랑스 영화감독(지난해 전주국제영화제를 찾아 홍 감독과 조우한 클레어 드니를 연상시킨다)으로 에피소드는 그녀가 한국 다큐멘터리 감독 부부 종수(권해효), 금희(문소리)와 모항을 찾았다가 겪는 사연을 그린다. 두 번째 이야기는 서울 서래마을에 사는 돈 많은 프랑스 여인으로 한국 감독(문성근)과 부적절한 사랑에 빠진 안느를 중심에 둔다. 한국여인에게 남편을 빼앗기고 방황하는 여인 안느가 세 번째 에피소드의 주인공이다.
영화는 조금씩 다르게 반복되는 이야기로 여러 가지 해석을 낳는다. 미니멀리즘처럼 단순하고 간결하면서도 풍성한 이면을 감추고 있다. 해변가 안전요원 유한(유준상)과 종수의 엉뚱한 행동을 빌려 남자들의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을 드러내고, 일상 속의 별스럽지 않은 대화와 행동을 통해 범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를 파악한다. 극적이지도 않고 무의미한 듯한 이야기로 소소한 웃음과 깊은 의미를 전해온 홍 감독 특유의 화법은 여전히 인상적이다.
구체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지만 많은 이야기를 품은 이 영화에 대한 홍 감독의 설명은 좀 유별나다. 그는 16일 시사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인이 외국인을 만날 때 행동들이 비슷하고 반복된다. 그것을 과장되게 밀어붙이면 뭐가 나올까 궁금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만들었지만 정확히 뭘 만들었는지 나도 모른다. (관객 개개인이) 보신대로 느끼면 될 것"이라고도 했다. 31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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