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동통신업계가 1년 반 째 끌어온 희한한 요금제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사실상 무료 제공인데 무료라는 말을 못하게 하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 때문이지요.
문제의 요금제는 SK텔레콤의 결합상품인 'TB끼리 온가족 무료'입니다. SK텔레콤의 휴대폰을 사용하는 가족숫자에 따라 집전화와 초고속인터넷을 할인해 주는 방식이지요. 가족 중에 2명이 SK텔레콤 휴대폰을 사용하면 집전화 200분을 무료 제공하고, 3명이 사용하면 초고속 인터넷이 공짜입니다.
그런데 방통위는 무료라는 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합니다. 원래 2010년 9월 SK텔레콤이 요금제 신청 당시 무료 제공을 내세웠으나 방통위가 이를 변경하도록 했습니다. 이유는 이동통신 1위업체인 SK텔레콤이 시장지배력을 앞세워 유선통신을 무료로 제공하면 공정경쟁을 해친다는 이유에서죠.
그래서 SK텔레콤은 무료라는 말 대신 이동통신과 유선통신에서 각각 할인해주고 있는데 결과적으론 초고속인터넷 무료제공과 똑같은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과정만 다를 뿐 결과는 똑같이 무료지요.
영업현장에서는 '무료'란 말이 그대로 쓰이고 있습니다. 마케팅 차원에서 무료라는 말 만큼 소비자의 눈을 사로잡을 말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방통위는 '무료'라는 표현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급기야 지난 3월 무료라고 말하지 말라며 행정권고를 했고, 지난달엔 시장 조사까지 했습니다. 방통위 관계자는 "행정 지도로 SK텔레콤이 최근 무료 광고문 등을 모두 폐기했고 가입신청서에서도 무료라는 말을 삭제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행정지도가 끝나자 일선 대리점에선 무료 안내문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업계에선 "무료를 무료라 부르지 말라는 건 홍길동에게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말라는 것과 똑같다"고 불평을 터뜨리고 있습니다. 방통위가 '무료'표현에 집착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분위기입니다.
결국은 방통위의 어정쩡한 정책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정말로 공정경쟁에 위배된다면 처음부터 이 요금제를 허가하지 말았어야죠. 허가를 해주고 무료라는 말만 못 쓰게 하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이거야말로 형식에 집착하는 관료주의의 전형이 아닌가 싶습니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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