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와 바그너 중 누가 더 유명한가? 베르디. 누가 더 대중적인가? 베르디. 누가 더 노는 데 선수인가? 바그너. 누가 더 정직한 시민인가? 베르디. 누가 더 혁신가인가? 바그너. 영향력은 누가 더 큰가? 바그너. 문화적 충격이 더 강한 것은? 바그너. 미국의 한 음악평론가는 이렇게 따져보니 4 대 3으로 바그너가 이겼다면서 독일 국가를 본떠 "바그너 바그너 위버 알레스(über alles:최고)!"라고 썼다. 바그너리안(바그너의 열광적 팬)의 글이지만 그의 말은 맞다.
■ 베르디와 바그너는 여러모로 대조적이다. 이탈리아인, 독일인이라는 국적과 기질의 차이가 음악에 그대로 드러난다. 베르디는 간명하고 바그너는 철저하다. 베르디가 선율, 즉 노래에 뛰어났다면 작품 전체의 극적 전개를 중시했던 바그너는 스스로 대본을 집필했던 사람이다. 베르디의 주인공들은 선량하거나 나약하다. 베르디가 인간적 감동을 추구했다면 신화적이고 초인적인 바그너는 사상가이며 종합예술가였다. 베르디가 밝고 가볍다면 바그너는 어둡고 무겁다.
■ 바그너에 대해서는 호오가 엇갈리지만 음악 문학 철학에 끼친 영향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구스타프 말러는 "오직 베토벤과 바그너만이 있었다"고 했고, 영국 시인 W.H.오든은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위대했던 천재"라고 극찬했다. 니체도 한동안 열렬한 숭배자였다. 바그너협회는 있지만 베르디협회는 없다. 독일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의 바그너 공연을 보려면 10년은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나치와 히틀러가 사랑한 바그너는 지탄과 기피의 대상이기도 하다.
■ 2013년은 베르디와 바그너의 탄생 200년이 되는 해다. 각국에서 두 작곡가의 오페라 공연이 많이 열리게 된다.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오페라는 1948년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였다. 바그너 공연은 1974년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대중적이지 못하다. 그러나 베르디와 바그너는 우열을 가릴 이유가 없는 불세출의 작곡가들이다. 듣기 좋고 알기 쉬운 베르디만 무대에 올리지 말고 장엄하고 초월적인 바그너 공연도 활발해지기를 기대한다.
임철순 논설고문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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