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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돈의 맛' 중산층 청년이 겪어본 재벌가, 화려하고도 모욕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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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돈의 맛' 중산층 청년이 겪어본 재벌가, 화려하고도 모욕적인…

입력
2012.05.15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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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갑다. 냉소 어린 대사들이 이어지고 혀를 찰 만한 상황들이 줄을 잇는다. 남녀가 뜨거운 입김을 내뿜는 장면이 등장하는데도 스크린은 냉기를 뿜어댄다. 임상수 감독의 신작 '돈의 맛'은 대한민국 최상류층의 호화로운 삶 이면의 비루함을 조소 가득한 시선으로 전한다. 인화성 강한 도발적인 소재를 냉랭한 어투와 블랙유머로 전해온 임 감독의 냉정은 여전하다. '돈의 맛'은 16일(현지시간) 개막하는 제65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다.

영화는 대기업 월급쟁이 주영작(김강우)이 회장 집의 갖가지 잡무를 다루면서 목격하고 겪게 되는 일들로 밑그림을 그려간다. 재벌가의 데릴사위가 되어 돈 쓰는 맛을 존재의 이유로 생각하는 난봉꾼 윤 회장(백윤식), 돈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에너지 삼아 살아가는 그의 아내 백금옥(윤여정), 부모의 행태에 비판적인 딸 나미(김효진), 철저히 돈에 의해서 움직이는 비정한 아들 철(온주완) 등이 어우러지며 재벌가의 감추고 싶은 치부를 스크린에 세묘해간다. 윤 회장이 필리핀 하녀 에바(마우이 테일러)와 순정한 사랑에 빠지고, 영작이 금옥과 몸을 섞은 뒤 급속히 돈의 권력에 휘말려가며 극적 긴장은 탄력을 얻는다. 사랑의 도피를 택하는 윤 회장을 향한 금옥의 분노가 폭발하고, 나미가 영작에게 마음을 주면서 영화는 종착점을 향해 가속도를 더한다.

임 감독의 영화답게 노골적이면서도 직설적인 대사들이 귀에 박힌다. 성관계를 지칭하는 영어 비속어가 예사롭게 오간다. 철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누나 나미에게 금옥과 영작의 관계를 폭로하기도 한다. 한국사회의 불편한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도 한다. 쌍용자동차 파업 진압 뉴스를 전하는 TV 화면를 배경으로 부당한 사업이 성사되는 장면이 나오고, 장자연 사건을 연상시키는 대사도 언급된다.

'돈의 맛'은 임 감독의 전작 '하녀'(2010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와 공통점이 적지 않다. '하녀2'라 불러도 무방하다. 나미가 금옥에게 어렸을 적 자기 눈앞에서 분신자살한 하녀를 언급하기도 하고, '하녀'와 김기영 감독의 동명 원작 영화의 특정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하녀'가 사회 하층민 여인의 시선으로 최상층의 어쩔 수 없는 속물 근성을 전달했다면 '돈의 맛'은 한 엘리트 남성의 눈을 통해 가진 자들의 파편화한 삶을 해부한다. 임 감독은 15일 열린 시사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하녀'를 찍고선 미진한 게 있다 생각해 새롭게 이야기를 만들어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전도연이 연기한 역할에 대중들이 감정이입을 못했다는 반성이 있어 영작 캐릭터로 새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하녀'가 출구 없는 자본주의의 지배구조를 차갑게 비판한 반면 '돈의 맛'은 작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 "돈 많고 힘 좋은 남자를 좋아하는 골빈 여자"이기를 거부하는 나미와 월급쟁이로서의 수모를 참아내면서도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려는 영작의 야릇한 교감을 통해 임 감독은 스크린을 지배하는 냉기를 조금이나마 제거하려 한다. 섣부른 낙관을 차단해버리는 '쿨'한 마무리를 즐기던 임 감독의 전작들과 다른 면이다. 임 감독은 "나미와 영작이 정말 예쁜 젊은 사람처럼 보이도록 찍고 싶었다"고 말했다.

섬세한 비주얼과 세련된 음악으로 등장인물의 정서를 전하는 임 감독의 세공술은 변치 않았다. 다양한 군상들을 붓 삼아 인간의 본성을 그리려는 그의 시도도 여전하다. 하지만 후반부의 선한 결말 때문인지 이야기의 찰진 맛은 덜하다. 임 감독의 팬들이라면 실망스러워 할 부분이다. 17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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