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책 한 권 준비 못하고 낡아 빠진 운동화에 쫄쫄 굶고 다니는 판자촌 학생들이 눈에 밟혀 교사들이 하나 둘 월급을 쪼개 장학금을 마련해왔다고 합니다. 그게 바로 20여 년 전 일입니다."
서울 노원구 하계중학교 교사들은 매달 월급날마다 5,000~2만원을 특별히 떼어둔다. 십시일반 모아서,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용품을 마련하지 못한 학생이나 소풍, 수학여행, 수련회를 앞두고 제대로 된 운동화나 활동복이 없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지급하기 위해서다. 참여 교사가 60명이 넘고 모금액도 2010년 500만원 정도로 규모가 작지 않지만 재직교사 중 누구도 장학회가 설립된 정확한 연도와 날짜를 알지 못한다. 올해 초 부임한 안봉희 교장은 "개교(1982년) 초기부터 교사들이 장학회를 구성했다고 들었지만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처럼 티 나지 않게 진행해 기록을 안 남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원 대상은 1차로 담임 교사의 추천을 받고 교장, 교감, 상담부장교사 등 5인 교사로 구성된 장학위원회 심사를 거쳐 선정되고, 1인당 10만원씩 지급된다. 안 교장은 "예민한 시기에 학생이 상처를 입지 않을까 걱정돼 장학금 받는 학생은 공개하지 않는다"며 "장학금도 통장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부모 통장에 입금되면 학생은 아예 모르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교사들의 특별한 제자사랑은 지역사회에도 알려져 지역 운수회사 사장과 이 학교 1회 졸업생들도 모금에 참여했다.
서울 강북구 인수중학교 교사 40여명도 2007년 교직원 장학회를 만들어 6년째 남다른 제자사랑을 실천해오고 있다. 교사들이 월급에서 매달 5,000~5만원씩 내놓아 마련한 장학금으로 2010년엔 34명, 올해 상반기에는 12명의 학생이 도움을 받았다. 배정수 인수중 교감은 "장학회가 꾸려질 당시에는 정부의 저소득층 지원이 활발하지 않아 수학여행비나 준비물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았다"며 "요즘에는 부모의 갑작스런 이혼이나 실직으로 어려움에 처한 복지 사각지대의 학생들이 늘었다"고 말했다. 이런 학생의 사정을 옆에서 지켜보던 담임 교사들이 학생을 추천하는데 생각지 못한 장학금에 감동한 학생들은"나도 선생님의 따뜻한 사랑과 관심을 받는 학생이라는 사실에 힘이 났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한마디는 교사들에게 활력소가 되고 있다.
스승의날을 앞두고 대단한 일도 아닌데 알려지는 게 부담스럽다는 하계중, 인수중 교사들은 "큰 돈은 아니지만 제자를 아끼는 마음으로 준비한 정성일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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