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뉴얼도 없으면서 뭐가 안전하다고 주민들을 불렀는교(불렀습니까)?"
14일 오전11시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본부. 기계 굉음을 뚫고 한 남성이 소리쳤다. 지난 2월 비상발전기 고장으로 인한 전원중단 사고 후 처음 열린 고리1호기의 현장 안전점검이 첫날부터 파행을 맞는 순간이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사고 후 신뢰 회복을 장담했으나 주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부산ㆍ울산 등 원전지역 주민대표 20여명은 원자력안전위원회·민간 특별위원회ㆍ원자력안전기술원이 한달 일정으로 돌입한 현장점검을 참관했다. 주민대표 참관은 투명성을 확보하겠다는 취지였다.
한수원 측은 비상발전기의 고장 원인이었던 밸브를 1개 더 추가했다며 안전성을 누차 강조했다. 설명을 듣던 주민들은 "매뉴얼에 비상발전기 사고를 대비한 부품을 몇 개나 준비하도록 돼 있는가"라고 물었고, "매뉴얼 상에는 (정해진 개수가) 따로 없다"는 답변을 듣자 격분했다. 주민들은 "생명이 걸린 일인데 재가동에만 급급하냐", "오래 된 비상발전기를 교체하지도 않고 고장 난 부품만 바꾸면서 매뉴얼도 미흡하면 누가 안심할 수 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이 떠난 뒤, 안전위 관계자가 "주민들의 질문을 미리 받아 준비하지 그랬느냐"고 질책하자 한수원 관계자는 "주민들이 발전기 정상가동을 보는 게 두려웠던 것 같다"는 엉뚱한 말을 했다.
매뉴얼의 유무가 파행의 원인은 아닐 것이다. 주민들이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밸브 개수가 아니라, 한수원이 과연 신뢰할만한 대비책을 갖추었느냐는 점이었다. 그간 한수원이 보여온 폐쇄적이고 고압적인 자세는 오히려 주민을 동요시켰다. 사고 직후엔 감추기에 급급하다 고작 3개월 만에 "안전하니 믿으세요"라고 배짱을 부릴 뿐, 주민들이 궁금해 하는 것을 낱낱이 설명하고 설득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주민들이 3월 지식경제부 장관에게 원전사고 비상 매뉴얼을 공개해 달라고 요구한 데에도 아무 답변이 없다.
주민 참관 없이 안전점검에서 고리1호기 재가동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나온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정부에 필요한 건 고리1호기 재가동이 아니라 화난 민심을 가라앉힐 지혜와 인내다.
강성명 기자 sm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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