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당 구당권파가 주도한 폭력사태와 몰상식에 대부분의 국민이 경악하는 모양이다. 특히 사적 이익단체나 조직폭력배 집단에서나 볼 수 있는 폭력성이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됐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래서인지 진보 정당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시점에서 터진 이번 사태에 진중권씨처럼 진보 진영에 비교적 우호적인 인사들도 강도 높은 언사로 폭력성을 맹비난하고 있다. 인터넷 댓글들은 훨씬 선명하다. "민초에게 30년간 기억될 퇴행을 낳았다"거나 "진보를 가장한 악랄한 정파주의자"라고 비난하는 네티즌도 있다. "'진보스럽다'는 '당 대표를 팬다' '말로 해야 할 걸 주먹으로 해결한다'는 말과 동의어"라거나, 폭력 방조 의혹이 짙은 처신 뒤에 "침묵의 형벌을 받겠다"고 말한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에 대해 "그대는 침묵을 청하지만 나는 Format을 원한다"는 등 조롱들이 난무한다. "상식은 통하지 않고 파렴치는 상상을 초월하며, 불법성은 고정화되고 폭력성은 행동지침처럼 나타났다"는 한 네티즌의 지적은 명쾌한 정리로 보인다.
사실 진보진영 내에서 폭력으로 민주적 절차를 깨는 일은 새삼스럽지 않다. 12일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가 폭력적으로 중단된 다음날 중앙위 의장인 심상정 공동대표는 "어제 드러난 일그러진 모습이 통합진보당 모습의 일부라는 것을 변명하지 않겠다. 오랜 진보정치의 낡은 관습과 유산으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머리 숙였다. '낡은 관습과 유산'이 뭘 의미하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번 폭력사태는 2005년 2월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폭력 난동과 거의 모든 면에서 일치한다. 사회적 교섭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당시 이수호 위원장은 대의원대회를 통해 노사정 대화 복귀를 꾀했지만 소수 극렬 강경파의 폭력적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에도 다수의 대학생들이 낀 강경파들은 영등포구민회관에서 열린 대회에서 격렬한 난투극을 벌이며 단상을 점거했고 위원장 폭행 시도도 있었다. 소화기 분사도 모자라 심지어 시너를 단상에 뿌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목불인견의 광경을 현장에서 지켜보던 기자도 섬뜩함을 느낄 정도로 살기등등함이 극에 달했다. 난동 직후 민주노총 내에서 '용납할 수 없는 비민주적 행위'라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형사고발 같은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민주노총은 "민주적 자주적 대중조직으로서 자정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실은 '조직의 치부'를 드러내는 일인데다 '동지를 팔아 넘긴다'는 의식이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폭력적 방해행위는 다음 달 대의원대회에서도 반복됐고 노사정 대화 복귀는 무산됐다. '대화와 투쟁'으로 노동운동의 활로를 모색했던 이수호 위원장은 결국 또 다른 내부 비리에 책임을 지고 그 해 10월 사퇴했다.
통합진보당 역시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신당권파도 비례대표 부정선거에 대한 검찰 수사 움직임에 대해 "당 차원의 수사 의뢰가 없는 상황에서 불순한 정치적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며 거부했다. 폭력사태 배후 색출과 주동자 사법처리 문제에 대해서도 "모든 것은 비상대책위원회의 권한과 책임 하에 이뤄진다"며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이고 14일 선출된 강기갑 비대위원장도 한마디 언급이 없었다.
일련의 불법사태를 조직 내부 문제로만 보고 법치를 부정하는 행태로는 다원적 사회의 한 축으로서 진보정당의 미래를 열 수 없다. 폭력혁명을 통한 체제 변화가 아니라 실로 국민의 지지로서 의회와 선거를 통한 혁명적 변화를 목표로 한다면 치부를 완전히 드러낸 바탕 위에서 국민의 공감을 얻어낼 혁명적 체질 개선 의지를 보여야 할 것이다. 폭력성이 우파가 주장하는 좌파의 본질이든, 운동권적 습성을 답습한 후진성에 기인하든 간에 낡은 관습과 유산을 도려낼 용기가 없다면 말로만'민주'를 외치는 진보의 그늘이 더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정진황 사회부 차장 jhch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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