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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권여선 두번째 장편 '레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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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권여선 두번째 장편 '레가토'

입력
2012.05.14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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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권여선(47)씨가 장편 <레가토> (창비 발행)를 냈다. 장편으로는 등단작 <푸르른 틈새> (1996) 이후 16년 만이다. 권씨는 등단 이후 단편 창작에 주력하며 세 권의 단편집을 펴냈다. 허약하고 어긋나기 쉬운 인간관계의 본질을 밀도 있게 탐구한 단편 작업을 통해 문학적 개성을 확고히 했고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며 성과를 인정 받았다.

그는 이 과정에서 "내 문학세계가 답보 상태에 있다는 답답함"을 느꼈고, 단편에 변화를 주는 한편으로 "이참에 장편을 쓰면서 스케일을 키워보자는 생각"을 품게 됐다. '음을 끊지 말고 이어서 연주하라'는 음악기호 명칭을 제목으로 단 이번 장편은 그러니까 권여선 문학의 제2기를 알리는 신호탄인 셈이다. 그는 작가의 말에 "이 장편을 쓰기 전까지 나는 진심으로 글이 노동임을 받아들이지 못했다"며 "내가 이러다 정말 소설가가 되려나보다"라고 적었다.

소설엔 주조연급 인물이 다수 등장한다. 1979년 서울의 한 대학 운동권 서클 선후배로 만나 3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온 이들은 서클 새내기 회원이었던 오정연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광주에서 올라와 열정과 매력으로 짧은 시간 동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고는 느닷없이 휴학하고 실종된 그녀. 당시 서클 회장으로 이기적 계산에 그녀를 범했던 국회의원 박인하, 79학번 동기인 그녀를 짝사랑했던 출판사 사장 신진태와 인하의 보좌관 조준환 등은 크든 적든 사라진 옛 동료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이들 앞에 정연과 아버지 다른 자매라는 유하연이 나타나 언니의 행방을 수소문하면서 이야기는 현재와 30년 전 과거를 오가며 급물살을 탄다.(촘촘한 플롯을 바탕으로 유연하게 시공간을 이동하는 작가의 솜씨가 소설 제목을 무색하지 않게 한다) 유신정권의 몰락, 신군부 쿠데타, 광주항쟁으로 이어지는 격변기를 무대로 저마다 비밀처럼 간직하던 정연과의 추억과, 그녀 혼자 감당해야 했던 비극적 사건들이 차례로 드러난다. 더불어 묘연하기만 했던 정연의 자취도 차츰 선명해진다.

1970, 80년대 운동권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90년대 유행한 이른바 '후일담 소설'과 맥을 같이 하고, 작가 또한 "이 소설이 후일담으로 읽히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는 그러나 "소설을 쓰면서 줄곧 왜 후일담이 지겹고 시대착오적인 틀로 간주되었는가에 대한 반성적 시선을 견지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활달하게 사건을 전개시키는 서술 방식은 무화(無化)된 과거와 대면한 인물의 심리 묘사에 초점을 맞췄던 이전 후일담 소설과는 거리가 있다. 실종된 정연의 행방을 좇는 미스터리적 구성도 이야기의 흡인력을 더한다. 비록 내밀한 복선, 충격적 반전이라는 미스터리 장르의 관습을 따르지는 않지만 작가는 인물과 사건에 대한 독자의 호기심을 노련하게 유지시켜 나간다.

소설은 정연의 행방을 명확히 드러내며 끝을 맺는다. 여느 소설처럼 그녀의 생사를 암시하는 정도로 여운 있게 끝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권씨는 "여러 버전의 결말을 생각했다가 분명한 결론을 택했다"며 "등장인물들을 그만 괴롭히고 싶다는, 그리고 내 자신도 그만 괴롭고 싶다는 소망이 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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