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은 한국영화 흥행의 한 이정표다. 한국영화 역대 최고 관객(1,301만9,740명)이라는 수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괴물' 이전과 이후 여름시장의 성격이 확연히 달라졌다는 게 영화인들의 일반적인 평가다. '괴물'의 흥행 성공은 국내 여름 극장가의 시장 잠재력을 확인했고, 여름을 겨냥한 블록버스터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여름 휴가철이 전통적 성수기이던 명절 연휴와 연말을 제치고 최고 대목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괴물' 이후 2007년 '화려한 휴가'와 '디 워'가 여름 극장가를 점령했고, 2008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2009년엔 '해운대'와 '국가대표'가 쌍끌이 흥행에 성공했다. 지난해엔 '퀵'과 '고지전' '7광구' 등 100억대 영화 3편이 각축을 벌였다. 2006년 이후 2010년을 제외하면 여름 극장가는 충무로와 할리우드 대작들이 뒤엉켜 흥행 왕좌를 다투는 치열한 전장이었다.
올해는 어떨까. 일단 여름 시장에 나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위용은 이미 드러났다. '어벤져스'가 올 개봉작으로선 최대인 544만7,699명(13일 기준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을 기록하며 포문을 연데 이어 10년 만에 새 시리즈로 돌아온 '맨인블랙3'(24일 개봉)가 출진 대기 중이다. '에이리언' 시리즈의 확장판이라 할 '프로메테우스'(6월 6일)와 이병헌이 주연을 맡아 화제를 모은 '지.아이.조2'(6월 21일), '어메이징 스파이더맨'(7월 3일), '다크 나이트 라이즈'(7월 19일)가 뒤를 이어 관객과 만난다. 충무로 입장에선 산 넘어 산이 따로 없다.
할리우드의 대작 파고에 맞설 충무로의 진용을 살피면 초라하기만 하다. '타짜'의 최동훈 감독이 연출한 100억원대 '도둑들'(7월말)을 제외하면 그만그만한 인지도와 덩치를 지녔다. 군복무 중인 비가 주연한 블록버스터 '비상: 태양 가까이'는 여전히 여름 개봉을 저울질하고 있고, 당초 올 여름 시장을 조준했던 재난영화 '타워'는 대형건물 화재를 다룬 영화라는 명목으로 찬바람 부는 11월로 옮겨갔다. 한해 장사를 판가름할 대형 전투를 앞두고도 충무로는 전열조차 정비되지 않은 모양새다. 출혈경쟁이란 말까지 나온 지난해와는 딴판이다.
올해 1ㆍ4분기 한국영화의 관객 점유율은 60.8%였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8.2%나 늘어났다. "한국영화가 되살아났다"는 섣부른 판단을 불러오기 충분한 수치다. 하지만 과연 올 연말 충무로는 웃을 수 있을까. 산업화의 단계를 밟고 있다지만 충무로의 현실은 여전히 주먹구구다. 여름을 앞둔 지금, 충무로가 짓던 봄날의 미소가 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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