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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길 위의 이야기] 성진 물텀벙이를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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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길 위의 이야기] 성진 물텀벙이를 지나며

입력
2012.05.1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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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한 살 많은 한 동네 언니가 내겐 유일한 친구였다. 키도 또래보다 훌쩍 크고 묶고 꽂는 머리끈이랑 머리핀도 무지 많은데다 프릴 달린 원피스도 매일같이 갈아입던 이른바 부잣집 막내딸, 유미 언니.

자동차라고는 택시 말고 타본 게 없던 내가 자가용이라는 네 바퀴 위에 몸을 실어본 것도 유미 언니네 포니가 처음이었다. 황갈색 차 엉덩이에 붙어 있던 갈기를 휘날리며 포효하던 그 말 장식의 고급스러움이라니. 사실 언니를 부러워했던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기도 했다.

그건 바로 언니네 집이 경양식집을 했기 때문이었다. 경양식이라고 이름은 들어봤나, 왜 커다란 흰 접시에 바삭하게 튀긴 돈가스가 놓이고 그 옆에 채 썬 양배추랑 깡통 옥수수랑 삶은 당근이 얹어져 있던 나 어릴 적 최고급 외식 메뉴. 가끔 언니네 초대로 우리 여섯 식구가 노르스름한 조명 아래 벽돌로 쌓아 올린 기둥 뒷자리로 안내를 받기도 했다.

싹싹 소스까지 다 핥아 먹은 여섯 개의 흰 접시 아래 언니네 아빠가 솜씨를 뽐낸답시고 색소폰을 불 때 아마도 우리 아빠는 맥주병으로 나발을 불었더랬지. 왜 우리 아빠는 외식이라면 돈가스에 코카콜라가 아니라 물텀벙이에 두꺼비 소주를 최고로 알았던 걸까. 고작해야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 그 소박함이 그 평범함이 일찌감치 몸에 밴 나는 그로부터 지금껏 유일한 매력 포인트랍시고 이거 하나 내놓고 산다. 애늙은이라는.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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