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결혼에 찬성한다"는 깜짝 발언으로 미국 정치권을 놀라게 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계산된 도박이 그 효과를 제대로 발휘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선언은 일단 미국 내 진보진영과 유럽 정치권의 호응을 얻는 데 성공했다. 보수진영은 동성결혼 문제가 11월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예의주시하며 대통령에 대한 즉각적 비판을 삼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10일 민주당 텃밭인 할리우드에서 열린 모금행사에서 "미국인들이 어떠해야 할지를 근거로 해 논리적으로 생각한 결과"라며 동성결혼에 다시 한번 찬성 입장을 밝혔다. 로스앤젤레스 스튜디오시티에 위치한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의 자택에서 열린 행사에는 배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토비 맥과이어 등 150여명이 참석해 지갑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모인 선거자금은 1,500만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민주당의 지원 사격도 등에 업었다. 해리 리드 상원 원내대표는 "9월 노스캐롤라이나 전당대회에서 동성결혼 합법화를 당 강령에 포함시키겠다"고 밝혔고 낸시 펠로시 하원 대표는 "나라를 위해 올바른 일을 한 것"이라며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외국 정치권도 적극 호응하고 있다.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유럽연합(EU) 내무 담당 집행위원은 "오바마 대통령이 이 문제에서 강한 지도력을 보여줬다"고 칭찬했고 동성 파트너를 둔 귀도 베스터벨레 독일 외무장관은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을 환영하며 "(동성 결혼 허용은) 독일의 정책과 합치한다"고 말했다. 적대국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의 딸 마리엘라도 찬사를 보냈다.
격렬하게 반대할 것으로 예상됐던 공화당 인사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발언이 공감대를 형성하자 추이를 지켜보자는 분위기다. 지난해 정부부채 협상 및 예산편성 과정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사사건건 각을 세웠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기자들의 질문에 "대통령은 자기가 원하는 어떤 얘기라도 할 수 있고 나는 미국인들이 관심을 가지는 일자리 문제에 집중하겠다"며 답을 피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예상치 못한 의제에 공화당이 제대로 허를 찔린 형국이다. 물론 종교계나 보수 유권자의 반발이 계속되며 이 문제가 공화당 표 결집으로 이어진다면 오바마 대통령의 선택은 패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은 동성결혼 찬성 발표 시기를 조율하다가 조 바이든 부통령의 예기치 못한 발언 때문에 그 시기를 앞당겼다고 시카고 트리뷴이 보도했다. 바이든 부통령이 6일 NBC방송 인터뷰에서 "(동성결혼에) 전혀 거부감이 없다"고 말했고 이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을 묻는 언론의 추궁이 이어지자 백악관이 급히 abc방송 인터뷰를 잡았다는 것이다. 바이든 부통령은 돌출 발언으로 대통령을 난처한 상황으로 내몬 것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에게 사과의 뜻을 전했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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