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단 고위 승려들이 호텔 스위트룸에서 밤새 포커 도박판을 벌인 게 드러났다. 지난달 23일,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이자 종단 원로였던 수산당 지종 대종사의 49재 전야에 벌어진 일이다. 스님들은 허리 아래는 가부좌이되, 손에 쥔 건 카드패고, 입에 문 건 연기 자욱한 담배와 술잔이었다. 일천만 불자들의 신심(信心)과 우리 불교의 청정수행 기풍을 일거에 뒤흔든 이번 사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참으로 개탄스럽다.
이번 일은 수행정진에 모범이 돼야 할 지도급 승려들의 치부가 드러났다는 것 못지않게, 그 경위도 매우 우려된다. 현장을 촬영한 '몰카' 동영상을 공개하고 검찰에 고발장을 낸 인물은 2009년 총무원장 선거 때 자승 현 총무원장에 대해 당선 무효소송을 내는 등 총무원과 대립하다 멸빈(승직 박탈)된 성호 스님이다. 그래서 종단에선 이번 일을 자승 총무원장에 반대하는 종권 다툼의 서막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잔뜩 긴장하고 있다. 실제로 종단 주변에선 최고위 스님들의 추문에 관한 제2, 제3의 폭로설이 나도는 등 뒤숭숭한 상황이다.
자승 총무원장은 취임 이래 '소통과 화합으로 함께하는 불교'를 천명하고, 지난해부턴 '자성과 쇄신 결사(結社)' 운동을 벌이는 등 내부개혁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MB 정권과의 유착 의혹부터 봉은사 직영 파동에 이르기까지 바람 잘 날 없이 내외의 시비에 시달려왔다. 지난 1월 한국일보 보도(25일자 2면)로 널리 알려진 범어사 주지 선거 돈봉투 사건 때 총무원 비판론이 일었던 것도 종단의 갈등을 반영했던 셈이다.
28일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터진 이번 사건에 책임을 지고 총무원 부ㆍ실장 스님들이 일괄사표를 냈다. 자승 총무원장도 어제 "종단 책임자로서 승가 공동체를 바르게 이끌어 오지 못한 것에 대해 부처님 전에 엎드려 참회한다"는 성명을 냈다. 하지만 가장 우려되는 건 종단 갈등이 더 확산돼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치닫는 상황이다. 불교와 조계종의 회생을 위해 자승 총무원장은 언제든 산사(山寺)로 돌아가겠다는 각오로 일대 개혁불사에 나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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