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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성직자의 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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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성직자의 타락

입력
2012.05.11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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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 과 더불어 르네상스 문학의 정점으로 꼽히는 작품이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이다. 재담 형식을 통해 사랑과 성, 탐욕에 얽힌 인간의 행태를 까발려 보여주는 유쾌한 작품이다. 총 100편의 단편 중에서 성직자들을 조롱하는 내용이 단연 압도적이다. 수도원장, 사제들이 신자의 부인이나 마을처녀를 꾀어 음행을 일삼거나, 업자를 협박해 돈을 뜯어내는 따위의 사기행각에 거침이 없다. 당대 성직자들의 위선과 타락상에 대한 적나라한 고발로 읽힌다.

■ 우리라고 다를 것 없다. 백성의 억눌린 심사를 풀어주는 카타르시스용으로 널리 성행한 게 탈춤놀이다. 황해도 봉산, 은율, 강령탈춤서부터 남쪽의 안동 하회별신굿놀이에 이르기까지 대사와 춤사위는 조금씩 다를지라도 주제는 대개 같다. 양반과 승려에 대한 풍자다. 그야말로 염불에는 뜻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는 목중(또는 먹중), 고승인 척 하다 결국은 음욕에 빠지는 파계승 노장이 기본 인물로 나와 취발이 등에게 된통 당하는 게 기본 골격이다.

■ 종교 성직자들의 타락엔 동서고금이 없지만 이번 조계종 승려들의 일탈은 가히 막장 수준이다. 종단에서 제법 지위 있는 이들이 담배를 꼬나 물고 카드패를 쪼아보는 모습이 한두 번 해본 본새가 아니다. 두툼한 몸피에선 조폭 같은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번듯하게 튼 가부좌에서만 그나마 절 밥의 이력이 엿보일 뿐이다. 이 일을 계기로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온갖 비리소문은 믿기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다. 중생들이 나서 거꾸로 승려들을 계도해야 할 판이다.

■ 조계종의 사실상 개조로 추앙되는 분이 보조국사 지눌이다. 세속의 권세와 향락에 취한 고려 불교의 타락상에 분연히 반기를 든 혁명가였다. 그가 주창한 돈오점수(頓悟漸修), 정혜쌍수(定慧雙修)란 결국 본연의 순정한 수행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도 닦는 이들은 탐욕과 음욕을 멀리하고, 머리에 붙은 불 끄듯 스스로 살피고 돌아보는 일을 게을리 말지니." 지눌의 <수심결ㆍ修心訣> 내용이다. 하기야 포커판 중들에겐 쇠 귀에 읽히는 경(經)일 테니.

이준희 논설실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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