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는 어린아이들만의 동화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 철학적인 담론은 어른이 읽어도 좋다. 인어와 인간이 다른 점으로, 인어는 300년을 사나 영혼이 없어 물거품으로 사라지고 인간에게는 불멸의 영혼이 있어 하늘로 올라간다든지, 자신이 살기 위해 복수를 택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버린 인어공주가 영혼을 얻고 하늘로 올라간다든지 하는 점은 철학적이고 종교적이다. 그런 안데르센 동화 덕분에 코펜하겐의 외진 해변 바위 위에 자리 잡은 인어공주상을 찾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급기야 상하이세계박람회 때 중국을 다녀와 600만 명의 구경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안데르센 말고도 덴마크에는 우리가 알 만한 사람들이 꽤 있다. 우리에게 농업 개혁의 달가스가 잘 알려져 있지만, 정작 덴마크인들에게는 농촌 협동조합과 국민 평생학교를 세우고 또한 많은 찬송가를 작사한 그룬트비히가 훨씬 더 추앙을 받는다. 불안과 고독의 괴짜 철학자 키에르케고어는 칸트와 헤겔의 관념철학에 반기를 들었는데 그도 덴마크인이고, 세계적인 원자물리학자 닐스 보아 부자 또한 덴마크 인이다. 노벨상 수상자가 열 명이 넘는다. 500만 인구에 비해 인적 자원이 부럽다. 놀면서 공부한다는 완구 레고 때문일까? 유치원 교육도 자연 속에서 시작되는 것이 덴마크 국민 교육의 특징이다.
수혜자가 미리 기여한대로 받는다는 독일 비스마르크식 복지와는 전혀 다른, 모든 국민이 세금을 많이 내고 그 복지 혜택을 함께 누리는 북유럽의 전형적인 복지를 구현하고 있는 덴마크에서는, 번 돈의 절반은 자신이 쓰고 절반은 모두의 공생과 복지로 쓰인다. 새 차를 사면 180%의 세금을 물고 그 돈으로 자전거 길을 깔고, 비가 오건 눈이 오건 코펜하겐 시민의 절반가량이 자전거로 통근, 통학을 한다. 비 오는 날이 더 많고 바람이 잦은 덴마크는 풍력 발전에 힘을 쏟으며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고 있다. 2050년에 화석에너지 제로를 달성하겠다는데 삼쇠, 본홀름 섬에서 그 비전을 앞당겨 보여주고 있다.
그런 덴마크왕국의 프레데릭 왕세자 내외가 한국을 공식 방문했다. 왕자 등 왕실인사의 방한은 늘 귀추가 주목되곤 했다. 멀리 대한제국 시절 1898년 덴마크는 세관원 2명이 원산에 근무하고 있을 뿐 우리와 외교 관계가 없었다. 고종 즉위 40주년이 되는 1902년에 이르러서야 덴마크 왕국은 러시아의 도움을 받아 대한제국과 우호통상조약을 체결했으며, 올해는 양국 사이에 첫 외교관계가 이뤄진 지 110년이 되는 해다.
프레데릭 왕세자는 유럽의 시위가 거셌던 1968년 5월 덴마크 여왕과 프랑스인 부군 사이에 태어났다. 세계에서 가장 큰 섬 그린란드를 자치령으로 가지고 있는 덴마크의 왕자답게 30대 젊은 시절 수개월을 개썰매를 끌고 그린란드 탐험에 나섰고, 작년에는 일본 대해일로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을 손수 찾아가 일본인의 마음을 사기도 했다. 왕세자비는 호주 출신으로, 그 부친은 3년간 서울 카이스트에서 수학을 가르친 인연이 있다. 덴마크 왕실 인사가 그러하듯 프레데릭 왕세자도 모국어 외에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편하게 쓰며, 올림픽 위원으로 평창 동계올림픽 준비 조정위원이기도 하다.
2007년 마그레테 2세 여왕,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의 국가방문에 이은 덴마크 왕실 인사의 공식 방한인데, 프레데릭 왕세자는 여수 세계박람회 개막식에 맞춰 대규모 경제사절단을 이끌고 방한했다. 이들 경제인단은 한·덴마크 녹색성장동맹과 한·EU FTA라는 좋은 토대 위에 한국과 경제, 통상, 투자 활성화 방안을 여러 부문으로 나누어 토론하고 한국 기업인들과 협력 방안도 모색하게 된다.
프레데릭 왕세자 내외는 한국에 있는 동안 서울은 물론, 여수와 거제, 부산 등 남도 지역을 방문한다. 바다를 주제로 한 여수세계박람회에서 덴마크는 물 자원, 재생 에너지, 환경을 주제로 덴마크의 앞선 모습을 박람회 참가자와 우리 국민들에게 보여주게 된다.
우리와 덴마크, 우리 지역과 유럽 지역의 새 협력의 지평이 프레데릭 왕세자의 공식 방한을 통해 열릴 것이다. 쪽빛 바다 한려수도와 한국의 봄 날씨가 먼 북유럽 벽안의 왕세자 내외가 한국을 새롭게 인식하고 한·덴마크 수교 110주년의 분위기도 무르익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김병호 주 덴마크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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