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세상 끝에서 만난 아이들' 작은 소망이 만들어 낸 큰 기적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세상 끝에서 만난 아이들' 작은 소망이 만들어 낸 큰 기적

입력
2012.05.11 11:40
0 0

세상 끝에서 만난 아이들/코너 그레넌 지음ㆍ이진 옮김/ 뿔 발행ㆍ408쪽ㆍ1만4000원

때론 인생이 더 소설 같다. 대학 졸업 후 8년 간 한 직장에서 일한 스물아홉 젊은이가 따분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택한 세계일주에서 이 엄청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필 첫 행선지로 전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한곳인 네팔을 택했고, 고아를 돌보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선택한 데 거창한 의도는 없었다. 그저 호주의 어느 해안 마을에서 6주 동안 외로움에 지친 코알라를 돌보는 프로그램과 비교해 "친구들과 가족에게 최대한 고생스럽게 보일 자원봉사 프로그램이 필요"했을 뿐.

그렇지만 누가 알았으랴. 인생은 때로 엉뚱하지만 바른 방향으로 우리를 이끈다. 스쳐가는 여행자였던 코너는 우여곡절 끝에 내전 중 유괴된 네팔의 일곱 아이들을 구출해 전 세계적으로 화제의 인물이 되고 아이들을 돕는 비영리단체 '넥스트 제너레이션 네팔(NGN)'을 설립한다. 운명을 바꾸는 건 순간순간의 선택이고, 그 선택은 개인이 살아온 삶의 방식과 가치관의 총체라는 점에서 보면 굳이 코알라보다는 절박한 아이들에게 기운 그의 선한 마음이 우연은 아니었을 것이다.

코너가 카트만두 고다와리 빈민촌에 있는 보육원 '어린 왕자들의 집'을 찾은 것은 2004년 11월. 학살, 굶주림, 유괴 등 온갖 비극에 시달렸을 아이들을 위해 "우리 모두는 너희를 정말(사랑해)…"라고 말하기도 전에 아이들은 "형 나라 사람들은 무얼 먹어요?"라며 호기심 가득한 질문을 퍼붓는다. 한꺼번에 달려들어 몸으로 부딪는 아이들과의 첫만남 이후 정신차릴 새 없이 석 달을 보내고 코너는 아홉 달 동안 16개 나라를 여행하지만 아이들의 눈빛이, 목소리가 아른거려 결국 이들 곁으로 돌아오고야 만다. 그때부터 보육원 울타리 밖 방치된 아이들의 실상을 보게 되고 마침내 코너의 작은 전쟁 서막이 열린다.

1996년 극좌 공산당인 마오당이 왕실 봉건제도 종식을 위한 반란을 일으킨 후 10년 가까이 이어진 네팔 내전은 숱한 목숨을 앗아갔고 그 과정에서 수만명의 아이들이 사라졌다. 실종된 아이들은 반군으로 또 노예로 팔려갔고 아이들을 보호해 줄 울타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코너는 네팔에서도 가난하고 외진 지역인 훔라의 비좁은 집에서 굶다시피 지내는 버려진 일곱 아이들을 만나는데, 인원을 한정한 보육원 규정 때문에 '어린 왕자들의 집'에 들이지 못하고 다른 보육원에 보내기로 한 채 뉴욕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일곱 아이들이 어디론가 팔려갔다는 사실을 알고 다시 네팔로 돌아오면서 비정한 현실과 맞선다.

이 책은 내전기간 동안 네팔에서 벌어진 아동밀매의 구체적인 사례를 체험을 바탕으로 해 고발한 논픽션이다. 사라진 일곱 아이들을 찾아 네팔로 떠난 뉴요커의 천일의 기록으로, 마침내 아이를 구해 가족을 찾아준 그의 집념과 열정이 뭉클하다. 저자는 책 출판을 통해 훔라 지역 보육원을 열 수 있는 자금을 확보했고 이제 아이들은 자신의 고향에서 살 수 있게 됐다. 출판 수입 중 일부는 보육원의 아이들을 위해, 또 네팔에서 밀매된 아이들의 가족을 찾는 데 쓰인다. 군데군데 첨부되어 있는 장난스런 표정의 아이들과 코너의 사진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소박하고 따뜻하고 무엇보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은 코너의 인간미와 책을 뚫고 튀어나올 듯한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생동감은 역자의 말대로 '그 자체로도 아름다워서 따로 장식이 필요하지 않은 들꽃'같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