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계 실질적 수장인 서울대교구장에 염수정(69ㆍ안드레아) 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가 임명됐다.
로마 교황청은 10일 낮 12시(한국시간 오후 7시) 정년으로 사표를 제출한 정진석(81ㆍ추기경) 서울대교구장 후임에 염 주교를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염 주교는 대교구장 임명과 동시에 대주교로 승품됐다.
평양교구장을 겸하는 서울대교구장은 한국 가톨릭계를 대표하는 실질적인 수장 역할을 한다. 광주와 대구도 대교구이지만 서울대교구는 한국 가톨릭을 대표하는 자리일뿐더러 신도 수가 141만명으로 국내 가톨릭 신자의 30%나 되기 때문이다.
염 주교는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된 뒤 “부족한 제가 막중한 직책을 맡아 송구스럽다”며 “존경하는 정 추기경의 사목 방향인 생명존중과 선교활동에 더욱 노력해 국민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기 안성 출신인 염 주교는 1970년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사제 서품을 받았다. 서울 이태원 본당과 장위동 본당 등의 주임신부를 거쳤다. 2002년 주교 서품을 받은 뒤 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로 재직하면 정 추기경을 보좌해왔다. 서울대교구 생명위원장, 평화방송ㆍ평화신문,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 ‘옹기장학회’ 이사장을 맡으면서 서울대교구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관계자는 “다른 교구 출신이 아니라 내부에서 교구장이 나왔다는 점에서 사제들이 환영하는 분위기”라며 “정 추기경으로 상징되는 다소 보수적인 교회 정책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정 추기경은 2006년 교회법에 따라 교구장 정년 제한인 만 75세에 교구장 사임서를 제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98년 5월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돼 14년간 봉직해 온 정 추기경은 신임 서울대교구장 착좌식이 열리는 다음달 25일 퇴임한다. 추기경직은 종신제로 그대로 유지된다.
염 주교가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됨에 따라 적절한 시기에 추기경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 추기경이 지난해 만 80세가 넘어 교황이 될 수 없고,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참석하는 비밀회의(콘클라베)에 참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염 주교는 표정이나 말투에서 전혀 권위적이지 않고 겸손하고 소탈하며, 풍부한 본당 사목 경험과 교구 행정에 밝은 ‘행정 전문가’다. 염 주교가 서울대교구청 사무처장으로 6년간 재임할 때 함께 생활한 고 김수환 추기경은 염 주교를 “훤한 인물이 말해주듯 인내와 겸손의 덕을 갖춘 주교”라고 평했다.
염 주교는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3형제 신부 집안 출신이다. 고 염한진(갈리스도)ㆍ백금월(수산나) 부부 슬하의 5남 1녀 중 3남인 염 주교는 4남 수완(서울 문정동 본당 주임), 5남 수의(서울 잠원동 본당 주임) 3형제가 서울대교구 소속 사제로 성직자의 길을 걷고 있다. 6대째 가톨릭을 믿고 있는 염 주교의 4대조 염석태 할아버지는 1850년 5월 충북 진천 감영에서 순교했고, 그의 부인 김마리아 할머니도 같은 해 9월 경기 죽산성지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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