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조계종 승려 8명이 지방호텔의 스위트룸에서 수억원대 밤샘도박을 한 걸 조계종 승려가 검찰에 고발했다. 도박 승려 중에는 조계종 내 국회의원인 중앙종회 의원과 전 종헌기구 의원, 말사주지도 들어있다고 한다. 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은 엄벌을 지시하고 총무원 간부들은 사표를 냈지만 조계종이 내놓을 해결책이라야 문제가 된 승려를 가려내 승적을 박탈하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이런 것은 근본적인 해법이 아니다.
근본적인 해법은 조계종이 세금을 내는 데에 있다. 종단에서 지위가 높은 이들이 거액도박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부도덕하기도 하지만 종단에 이름없는 돈이 넘쳐나서이다. 돈을 쓸 때마다 어떻게 썼는지를 영수증 첨부해서 밝혀야 하는 곳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기 힘들 것이다. 조계종에는 중앙의 관리를 받는 절이 있는가 하면 승려 개인의 관리로 끝나는 절이 있다. 어느 쪽이나 돈처리가 조금 불투명하지만 승려 개인 사찰은 더욱 심하다. 이것은 조계종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재정에 관해서 명확한 공개절차를 갖고 있지 않은 모든 기독교 교회나 다른 종단에도 다 해당되는 문제이다. 그러니까 해법은 정부가 종교단체에 세금을 내게 하는 데에 있다.
종교단체에 이름표 없는 돈이 흘러넘쳐서 생기는 문제는 이루 셀 수가 없다. 걸핏하면 절과 교회의 소유권을 놓고 싸움이 일어나는 것도 절이나 교회를 상속하며 생기는 분쟁도 이때문이다. 연말정산 때면 종교단체 기부금영수증을 이용해서 탈세가 가능한 것도 일단 종교단체로 들어가면 돈의 경로가 불명확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선은 종교단체에 과세를 하는 것이 이런 문제를 막는 첫걸음이다.
'우선은'과 '첫걸음'이라고 쓰는 것은 명확하게 돈의 경로가 밝혀지도록 되어 있는 곳에서도 불법과 비리는 계속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최근 한달 사이에 숨가쁘게 일어난 일을 보면 그렇다. 민간인사찰을 덮기 위해 장진수 전 공직윤리관실 주무관에게 돈 5,000만원을 전달한 류충렬 전 공직복무관은 직원들이 돈을 모아줬다고 했다가 관봉 사진이 공개되자 장인이 줬다고 했다. 거짓말의 진짜 배후를 밝혀야 한다는 참에 파이시티 뇌물건이 터졌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기획재정부 차관이 양재동에 건물을 크게 올려주는 민원을 알선해주는 대가로 수억 내지 수십억의 돈을 받아먹었다. 차명계좌를 빌려줘서 박영준 전 차관의 뇌물을 세탁해준 기업가는 포스코의 하청업무를 맡으며 급성장했고 포스코 회장은 또 박영준 전 차관의 입김으로 그 자리에 올랐네 마네 하더니 급기야는 파이시티 건축허가가 난 것은 오세훈 시장 때이지만 두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이니까 대통령이 관여했는가에 눈길이 쏠릴 무렵 저축은행 4개가 퇴출이 됐다. 이번에는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의 엽기적인 행동이 연일 언론을 장식했다.
금융업체를 금융기관이라고 부를 정도로 금융의 공공성이 중시되는 나라에서 금융업체 회장이 밀항을 시도하다 체포가 되어서 밝혀보니 신용불량자였다. 젊어서는 서울대 법대생을 사칭한 전력이 있고 회삿돈을 빼돌리기 위해 불법 도난신고를 하는가 하면 친인척의 이름으로 땅과 집과 골프리조트까지 사들였는데 거기에 들어간 돈은 규정상으로는 그가 대출받아서는 안 되는 미래저축은행에서 나왔다. 불법 부실 투성이의 이 금융업체에 하나금융지주 계열의 하나캐피털이 작년에 145억원이나 투자했다. 상식적으로 안되는 일이 계속 드러났다.
한국사회에서 고위층이 법과 원칙을 깨는 주범이 되는 이유는 따지고 보면 그들 주변에서 이름없는 돈이 넘쳐나고 불법과 탈법이 일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보다 무서운 것은 이들의 행위를 구석구석에서 잡아줄 수 있는 금융기관과 국세청 일선 어디에서도 이 문제가 걸러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옳은 일을 해봤자 위에서 막힌다는 자괴감이거나 자리를 보전한다는 이기심 때문일텐데 평범한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되면 그 사회는 붕괴직전인 것 맞다. 적어도 불법도박을 고발할 수 있는 승려 정도는 나와줘야 하는데, 그 정도도 못되는 한국사회는 도대체 어떻게 될까.
서화숙 선임기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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