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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유권자의 날 제정을 보면서

입력
2012.05.0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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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된다는 건 설레는 일이다. 그 동안 할 수 없던 몇 가지를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술집에서 당당히 주민등록증을 내밀고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보다 중대한 권리가 있다. 바로 '유권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은 만 19세가 되면 선거권을 부여 받는다. 나는 1989년 8월생으로 유권자가 된 지는 몇 년 지났으나 그동안 전국선거가 없었기 때문에 올해 처음 총선에 투표했다. 대신 2009년과 2011년에 서울시장 선출에만 두 번 참여하면서 이번 해를 손꼽아 기다려왔다. 그러나 정작 큰 관심을 뒀던 지난 총선에서 선출 결과가 아닌 '참여' 결과 때문에 좌절했다. 절반 가까이 되는 대한민국 국민은 어디로 갔을까.

저조한 투표율은 항상 거론되는 사회적 문제지만, 직접 투표소에 다녀오고 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게 다가온다. 지난달 11일 치러진 제19대 국회의원선거 최종 투표율은 54.3%였다. 처음으로 재외선거를 시행해 전체 유권자 수에 재외국민이 포함됐다는 점을 고려해도 매우 아쉬운 수치다. 성인이 되고 몇 차례 선거들과 함께하면서 유권자의 표심보다는 얼마나 많은 유권자가 참여할지가 더 큰 관심사가 됐다. 특히 대학생과 같은 젊은 세대의 선거에 대한 무관심을 체감하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사실 일상생활에 젖어 있을 때 선거권의 소중함을 느끼기란 쉽지 않다. 대한민국 헌정사를 공부하며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한 이전 세대 투쟁의 역사에 울컥하는 것도 잠시, 눈앞의 일에 쫓겨 사는 것이 현대인의 삶이다.

학창시절부터 한자리에 앉아 원스톱으로 반장을 선출하던 우리다. 그러니 후보자들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고 투표소를 찾아가 투표하는 것이 몸에 배어있을 리 만무하다. 대다수 유권자에게 선거 공휴일은 수능 날 수험생들을 위해 학교를 내어주는 중학생의 마음으로 다가온다.

일부 어른들은 우리 세대의 정치참여를 낙관하기도 한다. 우리는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각종 정치이슈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개진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인터넷 여론을 의식하고 시민과 온라인으로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위기도 이끌어냈다. 대통령 이름도 함부로 발설하지 못하고, 거리로 뛰어나가 목소리와 힘을 모아야만 했던 과거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적극적인 모습이 투표에 대한 의지로는 온전히 이어지지 않는다.

또래 친구들로부터 "세상이 과연 바뀔까?"라는 추상적인 질문을 종종 받는다. 사실 그들도 나 역시 그 답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리라. 그저 답답한 마음에 한 번 던져보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세상을 더 좋게 만들어 나갈 작은 힘이 분명히 있다는 것만은 확신한다. 바로 '유권자'의 권리를 당당히 행사하는 것이다.

서울역에 갔다가 매년 5월 10일을 '유권자의 날'로 제정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봤다. 1948년 5월 10일에 우리나라 최초의 선거가 시행된 점을 참작하면 모든 유권자의 탄생일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총선과 대선이 동시에 치러지는 해에 뜻 깊은 기념일까지 맞이하게 됐다. 대한민국 선거와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이번 해가 중요한 전환점이 될지는 모두 유권자 개개인의 판단과 행동에 달렸다.

과거에는 "왕(대통령)이 계시는데 선거를 왜 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민주정치에 무지하던 시절도 있었다. 부디 이제는 모든 국민이 성숙한 의식과 자부심 있는 유권자로 거듭나기를, 나아가 새로 시행될 유권자의 날이 유권자의 낮은 정치참여로 무색해지는 일이 없기를 기원한다.

이지영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4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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