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가수의 살아있는 전설이라고 한다면 많은 인물들이 있지만 필자의 머릿속에는 단연 조용필이 자리잡고 있다. 조용필이 살아있는 가수의 전설이 된 데는 아마도 출중한 가창력, 수많은 히트 곡, 그리고 장르를 넘나드는 대중성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당시 젊은 층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면서 오빠부대를 끌고 다녔고, 마약 사건으로 한동안 무대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극적으로 부활하는 인내력과 불굴의 의지도 보여줬다. 조용필은 혼자서 뿜어내는 카리스마의 가수이며 아날로그 시대의 끝 무렵에 활동했다는 점에서 요즘 가수들과는 구별된다. 조용필은 어떤 의미에서는 구세대의 스타이고 장년층 이상에게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날로그 스타이다. MP3 플레이어가 나오기 이전의 스타이고, 뮤직 비디오가 유행하지 않던 시대의 가수이며,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와 상관없는 예술인이다.
반면 조용필과 대비해 요즘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가수가 있다면 단연 소녀시대라는 걸그룹을 들 수 있다. 물론 소녀시대뿐만 아니라 원더걸스, 카라, 티아라, 애프터스쿨 등 수많은 인기 걸그룹이 있지만 아마도 가장 꾸준하게 국민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룹은 소녀시대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 소녀시대는 조용필과 비교할 때 매우 다른 시대적 배경과 트렌드 속에서 스타가 된 가수들이다. 사실 요즘 소녀시대를 가수라고 부르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가수라는 호칭보다는 걸그룹, 혹은 엔터테이너라는 호칭을 훨씬 더 많이 쓰고 있는데, 이러한 호칭에서부터 조용필과 확연히 구분된다. 호칭뿐만이 아니라 이들은 아날로그 시대가 아닌 디지털 시대의 스타들이며, 음반이 아닌 TV와 컴퓨터, MP3 플레이어를 통해서 스타가 된 엔터테이너들이다. 노래의 실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조용필 시대와는 달리 보여주는 비주얼이 엄청나게 중요하고, 거의 모든 것이 기획사에 의해서 기획되어 시장에 나오는 기획상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소녀시대는 또한 혼자서 카리스마를 뿜어대는 가수가 아니라 뛰어난 외모의 '소녀'들이 그룹을 이루어 서로 호흡을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시너지의 그룹이다. 거기다가 그룹 멤버들이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각각의 팬들을 보유하고 있으며 춤, 외모, 가창력, 분위기에서 분업이 매우 잘 이루어지고 있는 그룹이다. 따라서 조용필과는 달리 전국적으로 팬에 대한 포트폴리오가 가능하고, 그룹 멤버 전원이 반드시 다 노래를 잘 부르고 카리스마가 있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잘 기획된 이미지와 마케팅, 젊은이의 트렌드를 읽어내는 능력, 신곡 발표의 타이밍, 그룹 멤버간의 시너지등이 경쟁력을 만들어 낸다. 예쁜 소녀들이 세련된 이미지로 잘 훈련된 댄스를 하면서 트렌디한 노래를 부른다면 누가 싫어할 것인가.
이렇게 조용필과 소녀시대에 대한 얘기를 장황하게 한 이유는 바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대통령 선거에 임하는 전략의 차이를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물론 전략이라는 것은 상황과 필요에 따라서 바뀌는 것이지만 현재의 여러 가지 정치적 자산구성을 볼 때, 새누리당은 조용필 전략으로 가게 될 것이며 민주통합당은 소녀시대 전략으로 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는 아날로그 세대의 수퍼스타이며, 개인적인 카리스마와 정치적인 가창력을 보유하고 있고, 또한 장년층 이상에서 박정희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국민적 스타이다. 현재로서는 차기 대선전에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다. 반면 민주통합당은 각기 개성이 다르고, 각각의 팬클럽을 보유하고 있으며, 반면 정치적 가창력에서는 박근혜에게 많이 뒤지는 경쟁력을 가진 대선주자들을 보유하고 있다.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 등이 그렇고, 잠재적인 대권주자인 안철수가 그렇다. 따라서 이들은 혼자서 박근혜를 상대해서는 이기기가 매우 어렵다. 소녀시대와 같이 그룹으로 뭉쳐서 분업을 하고, 시너지를 만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잘 기획된 이미지 창출과 마케팅이다.
과연 이들이 소녀시대를 만들어 낼지, 아니면 조용필에게 한 수 가르침을 받는 '나가수' 출신의 개개인 가수들이 될 지, 그것이 민주통합당의 승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지금 조용필이 나온다 하더라도 전국적으로 소녀시대의 인기를 능가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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